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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마일스 케네디와 합작한 두 번째 솔로 앨범, 슬래쉬(Slash)의 'Apocalyptic Love'


01 Apocalyptic Love
02 One Last Thrill
03 Standing in the Sun
04 You're a Lie
05 No More Heroes
06 Halo
07 We Will Roam
08 Anastasia
09 Not for Me
10 Bad Rain
11 Hard & Fast
12 Far and Away
13 Shots Fired
Deluxe Edition ↓
14 Carolina
15 Crazy Life

건스 앤 로지스(Guns N' Roses)의 로큰롤 명예의 전당 입성이 확정되었지만 액슬 로즈(Axl Rose)가 참석을 거부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기념 공연 정도는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팬들의 기대도 처참하게 깨졌다. ‘재결성 떡밥’을 던진 매체들도 허무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 순간 전성기 라인업으로 지금까지 밴드를 유지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다른 멤버들은 또 얼마나 착잡했을까. 15년을 끈 「Chinese Democracy」(2008) 문제는 새 멤버로 해결했지만, 재결합 여부를 떠나 오랫동안 지속된 예전 멤버들과의 갈등은 아직 해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의견이 일치했던 거의 유일한 순간은 소속사의 「Greatest Hits」(2004) 발매를 막으려했던 때가 아닐까 싶다. 결국 출시된 그 앨범은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미국에서만 500만장이 넘게 팔렸다.

전성기를 누리던 건스 앤 로지스를 떠나야했던 슬래쉬(Slash)는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스네이크핏(Slash's Snakepit)으로 2장의 앨범을 발표했고, 예전 동료인 더프 맥케이건(Duff McKagan), 맷 소럼(Matt Sorum), 그리고 스톤 템플 파일럿츠(Stone Temple Pilots)의 스캇 웨일랜드(Scott Weiland)와 함께 벨벳 리볼버(Velvet Revolver)를 결성했다. 데뷔작 「Contraband」(2004)는 미국 차트 1위를 기록하며 200만장이 판매됐다. 3년 뒤에 발매된 2집 「Libertad」(2007)도 골드를 기록했다. 이후 밴드를 탈퇴한 스캇은 다시 스톤 템플 파일럿츠에 합류했다. 최근 활동 중단에 들어간 밴드의 재결성 소식이 보도되기도 했지만, 슬래쉬와 더프는 스캇과 다시 작업하는 것에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따라서 벨벳 리볼버 3집은 새로운 보컬리스트와 함께할 가능성이 높다.

슬래쉬는 2008년부터 솔로 앨범을 준비했다. 합주를 통해 곡을 만드는 벨벳 리볼버와는 다른 방식으로 작업했고, 솔로 데뷔작 「Slash」는 2010년에 발매됐다. 이 앨범은 발매되기도 전에 산타나(Santana) 부럽지 않은 화려한 게스트로 화제를 모았다. 오지 오스본(Ozzy Osbourne)과 이기 팝(Iggy Pop), 크리스 코넬(Chris Cornell), Dave Grohl(데이브 그롤), 그리고 이지 스트래들린(Izzy Stradlin)의 이름이 보였다. 마룬 5(Maroon 5)의 애덤 레빈(Adam Levine)과 퍼기(Fergie)도 눈에 띄었다. 앨범은 미국 차트 3위에 올랐고, <Back From Cali>와 <Starlight>에 참여한 얼터 브릿지(Alter Bridge)의 마일스 케네디(Myles Kennedy)가 슬래쉬 밴드 투어의 보컬리스트로 활약하게 되었다. 슬래쉬는 여러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 마일스를 극찬하며 애정을 드러냈다. 기타 연주와 작곡 능력도 출중한 마일스는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재결성 소문이 있던 2008년 로버트 플랜트(Robert Plant)를 대신할 보컬리스트로 떠오르기도 했던 인물이다.

슬래쉬는 2011년 영국 빅토리아 홀 공연을 담아낸 라이브 앨범 「Made In Stoke 24/7/11」를 발표했다. 마일스는 솔로 1집과 스네이크핏 시절은 물론 건스 앤 로지스, 벨벳 리볼버 곡도 모두 멋지게 소화해냈다. 그가 부르는 <Nightrain>, <Civil War>, <Paradise City>, <Slither>는 기대 이상으로 매력적이었다. 작년 3월에는 이 앨범과 흡사한 레퍼토리로 내한공연을 갖기도 했다. 슬래쉬는 트위터를 통해 믿을 수 없는 밤이었다며 거친 한국 팬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다.

슬래쉬는 1집 투어 때부터 새 앨범을 마일즈와 함께 작업할 것이라고 말하며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작년 6월부터 본격적인 앨범 작업에 착수했고, 지난 2월 모든 작업을 완료했다. 프로듀서는 전작을 함께한 에릭 발렌타인(Eric Valentine)이 맡았다. 슬래쉬는 모두가 에릭의 작업 방식을 좋아한다며 굳은 신뢰를 드러냈다. 첫 싱글 <You're A Lie>는 2월말 라디오와 온라인을 통해 공개됐다. 마일스의 보컬과 슬래쉬의 리프는 맹수 본능을 드러내는 것처럼 야성적이었다. 매우 헤비한 신작이 될 것이라던 예고처럼 사운드는 육중했다.

이번 앨범은 게스트의 활약이 돋보인 전작보다 더 솔로 데뷔작 같은 느낌이 강하다. 모든 곡에 참여한 마일스는 최고의 협력자였다. 완벽한 균형감을 얻기 위해 앨범 작업에 앞서 매달 3주씩 연습을 했고, 슬래쉬는 짧은 휴가를 가졌을 때도 노트북과 기타를 챙기며 작업을 이어갔다. 그리고 그 순수한 열정으로 매우 강렬한 하드록 앨범을 완성했다. 음악적으로 크게 달라진 것은 없는, 전형적인 슬래쉬 사운드다. 오프닝이며 타이틀곡인 <Apocalyptic Love>와 엔딩 트랙 <Shots Fired>는 초기 건스 앤 로지스를 연상시킨다. 약간 톤을 낮춘 액슬 로즈 목소리를 듣는 기분이었다. 조금 더 속도를 높여 질주하는 <One Last Thrill>은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 곡을 빠르게 편곡한 것 같다. 억제되지 않은 로큰롤이지만, 음향에 많은 신경을 쓴 곡이다. 이어지는 <Standing In The Sun>도 굉장히 뜨겁다. 슬래쉬의 기타와 브렌트 피츠(Brent Fitz)의 드럼이 돋보이는 곡이며, 후반부 리프는 매우 즉흥적으로 완성됐다. 슈퍼 히어로 영화에 삽입되어도 어색하지 않을 <No More Heroes>는 앞선 곡들보다 더 대중적이고 세련된 사운드를 선사한다. 반복되는 힘찬 후렴구가 친근하다.

많은 팬들이 최고의 곡으로 손꼽을만한 <Halo>는 군더더기 없는 헤비메틀 넘버다. 스페인 호텔에 묵을 때 들은 음악들에서 영감을 얻었고, 사운드는 씬 리지(Thin Lizzy)와 아이언 메이든(Iron Maiden)을 연상시킨다. 스패니시 기타로 시작되는 <Anastasia>는 공연 중에 영감을 얻은 기타 중심의 곡이다.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 D 장조(Toccata And Fugue In D Minor)를 샘플링 했으며 수록곡 중 가장 길고 드라마틱하다. 잠시 숨을 고르는 듯한 <Not For Me>는 느리고 무겁다. 건스 앤 로지스의 1990년대 곡들을 연상시키며 절제된 보컬과 블루지한 솔로가 인상적이다. 마무리가 아주 멋진 곡이다. 제목과 100% 일치하는 사운드를 선사하는 <Hard & Fast>도 짜릿하다. 자유를 만끽하면서 곡을 완성한 느낌이다. 유일한 발라드라 할 수 있는 <Far And Away>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아름다운 곡이다. 무엇보다 마일스의 따뜻한 음색이 돋보인다. 딜럭스 에디션에 실린 <Carolina>와 <Crazy Life>도 신나고 간결한 록 넘버다.

분석은 필요하지 않다. ‘굉장히 신나는 앨범’이라는 표현만큼 적절한 것이 또 없을 것 같다. 너무 정직해서 흥미가 반감될 수도 있겠지만, 원초적인 주류 록 앨범이 적은 시대라 「Apocalyptic Love」의 존재감은 더욱 돋보인다. 음악도 음식도 퓨전이 유행이지만, 아주 고집스럽게 ‘본래의 맛’을 강조한다. 최고의 파트너를 찾은 슬래쉬는 ‘Apocalyptic Love World Tour’가 끝나도 긴 휴식을 취하지 않을 것 같다. 슬래쉬 밴드와 얼터 브릿지를 오가며 정신없이 활동 중인 마일스 케인의 멀티 플레이도 계속될 전망이다. 
  
월간 핫트랙스 매거진 2012년 6월호 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