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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풍부한 감수성을 느낄 수 있는 솔로 2집, 제임스 이하(James Iha)의 'Look To The Sky'


01 Make Believe
02 Summer Days 
03 To Who Knows Where
04 Till Next Tuesday 
05 Dream Tonight 
06 Dark Star
07 Appetite 
08 Gemini
09 Waves 
10 Speed Of Love
11 4th Of July 
12 A String Of Words 

제임스 이하(James Iha)는 지금도 스매싱 펌킨스(The Smashing Pumpkins)의 기타리스트로 기억된다. 일본계 미국인인 그는 1987년, 빌리 코건(Billy Corgan)을 만나 스매싱 펌킨스를 결성했고, 10년간 5장의 정규앨범을 발표하여 3천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기록했다. 스매싱 펌킨스는 빌리 코건(Billy Corgan)을 중심으로 돌아갔지만, 인기가 가장 높은 멤버는 제임스였다. 차분하고 내성적인 소년 같은 그의 모습은 신비감을 불러일으켰고, 여성 팬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전설로 회자되는 첫 내한공연 때도 제임스 주변이 가장 혼잡했었다는 후문이 있다.

스매싱 펌킨스는 다작으로 유명한 빌리가 모든 곡을 만들고, 숨은 조력자인 제임스가 밴드 사운드를 완성하는 구조였다. 그러나 예외도 있었다. <I Am One>과 <Soma>, <Mayonaise>, <Farewell And Goodnight>은 제임스와 빌리의 합작곡이다. 비정규앨범에 주로 실린 제임스의 자작곡은 거칠고 신경질적인 면이 있던 밴드 사운드와 달리 부드럽고 평온했다. 그의 여리고 섬세한 보컬을 들을 수 있던 <Blew Away>, <Take Me Down>, <Summer> 등은 히트곡이 아니었지만, 숨겨진 명곡 대접을 받았다.

제임스는 1998년, 스매싱 펌킨스의 「Adore」가 나오기 몇 달 전에 첫 솔로 앨범 「Let It Come Down」을 발표했다. 자작곡으로 채워진 이 앨범은 미국에서 171위를 기록했다. 기타 대신 보컬에 중심을 둔 앨범을 원했던 제임스는 녹음에 앞서 보컬 트레이닝을 받기도 했다. 앨범에는 화사한 선율에 간결한 비트를 더한 <Be Strong Now>와 <Sound Of Love>, 담담하고 차분하게 전개되는 <See The Sun>, <Lover, Lover>, 1970년대 포크송 같은 <Country Girl>, 아늑한 꿈결 같은 <Silver String>, <No One's Gonna Hurt You> 등이 수록됐다. 어쿠스틱 기타가 주도하는 무난한 사운드와 선명한 멜로디에서 포크와 파워 팝 취향이 드러났고, 기타리스트가 아닌 싱어송라이터 이미지를 강조했다.

2000년 스매싱 펌킨스 해체 이후 제임스는 더 활발하고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2001년 일본에서 음악과 패션 디자인을 결합한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며 일본 뮤지션들의 앨범 프로듀싱을 맡기도 했다. 인디 밴드 아이비(Ivy)와 컨트리 밴드 위스키타운(Whiskeytown) 앨범에도 참여했다. 2003년에는 바네사 앤 더 오스(Vanessa And The O's)란 밴드에 합류하여 스웨덴에서 EP 앨범을 냈다. 같은 해 여름에는 프로젝트 밴드 퍼펙트 서클(A Perfect Circle)에 합류하여 투어에 동참했고, 커버곡으로 구성된 「eMOTIVe」(2004) 앨범에도 참여했다. 앨범은 미국 차트 2위에 오르며 골드를 기록했다. 퍼펙트 서클이 활동을 중단한 이후에는 뉴욕에서 DJ로 활동하기도 했다. 2005년에는 배두나가 주연을 맡은 일본 영화 ‘린다 린다 린다’의 음악을 작업했고, 미국 가족영화 ‘윈-딕시 때문에’ 사운드트랙에도 참여했다. 2006년에는 세르쥬 갱스부르(Serge Gainsbourg) 트리뷰트 앨범에 참여하여 캣 파워(Cat Power)와 카렌 엘슨(Karen Elson)의 듀엣곡 <I Love You (Me Either)>, 마이클 스타이프(Michael Stipe)가 노래한 <L'Hotel>의 프로듀스를 맡았다. 그리고 카주 마키노(Kazu Makino)와의 듀엣곡 <The Ballad Of Bonnie & Clyde>도 선보였다. 그밖에도 여러 아티스트와의 콜라보레이션, 프로듀싱, 리믹스 작업 등으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갔다

한편 스매싱 펌킨스의 재결성은 2007년에 성사됐지만, 제임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기존 팬들은 ‘반쪽자리 재결성’을 아쉬워했고, 빌리는 제임스가 합류하지 못한 이유를 끝내 밝히지 않았다.

신작 「Look To The Sky」는 솔로 1집 「Let It Come Down」(1998) 이후 14년 만에 발표하는 솔로 앨범이다. 두 번째 솔로앨범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은 2007년부터 들렸지만, 프로젝트 밴드 틴티드 윈도우즈(Tinted Windows) 활동으로 기약 없이 미뤄지게 됐다. 틴티즈 윈도우즈는 핸슨(Hanson)의 테일러 핸슨(Taylor Hanson), 파운틴즈 오브 웨인(Fountains Of Wayne)의 아담 슐레진저(Adam Schlesinger), 그리고 칩 트릭(Cheap Trick)의 번 이. 카를로스(Bun E. Carlos)와 함께 2009년 결성한 파워 팝 밴드다. 이후 제임스 이하는 퍼펙트 서클 멤버로 2011년 여름까지 투어에 참가했다. 퍼펙트 서클 투어를 모두 끝마친 제임스는 미뤄둔 솔로 앨범 작업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새 앨범의 전반적인 느낌은 14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개인적이면서도 친밀하고, 감정이 풍부하다. 다양성이 있는 앨범이길 원했고 편곡의 변화도 줬지만, 무리수는 두지 않았다. 앨범의 톱 트랙 <Make Believe>와 <Till Next Tuesday>는 카디건스(The Cardigans)의 니나 퍼슨(Nina Persson)이 코러스로 참여한 어쿠스틱 팝이다. 멜로디는 살갑고, 제임스의 속삭이는 보컬도 여전하다. 전작의 소박하고 담담한 어쿠스틱 성향이 반영된 <4th Of July>, <A String Of Words>는 한없이 평온하다. 업비트의 일렉트로닉 팝 <Summer Days>, <To Who Knows Where>는 봄바람처럼 따뜻하고 상쾌하다. 제임스가 최근에 본 공연 중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극찬한 예 예 예스(Yeah Yeah Yeahs)의 캐런 오(Karen O)는 <Waves>에 보컬로 참여했다. 이 곡은 낮고 조용하게 흐르다가 신스팝처럼 상쾌하게 마무리된다. 스매싱 펌킨스의 아름다운 시절을 회상하게 만든 <Gemini>는 특별한 게스트 없이도 풍성한 느낌을 전달하고, 뭉클한 감동을 안긴다.

가장 인상적이고 실험적인 곡은 <Appetite>다. 슈퍼그룹처럼 화려한 게스트에, 1970년대 데이빗 보위(David Bowie) 같은 드라마틱함이 더해졌다. 격렬한 피아노와 전위적인 기타 연주도 들을 수 있다. 피아노를 연주한 마이크 가슨(Mike Garson)은 데이빗 보위의 ‘Ziggy Stardust Tour'에 참여했던 거물급 연주자다. 기타의 주인공은 텔레비전(Television) 출신의 톰 벌레인(Tom Verlaine)이다. 그는 패티 스미스(Patti Smith) 밴드의 스페셜 게스트로 2009년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에 출연했다. 베이 루트(Beirut)의 켈리 프랫(Kelly Pratt)은 호른을 연주했다. 제임스의 인맥과 상상력이 총동원된 곡이다.

일본 매체에서 향후 솔로 활동 계획을 묻자 제임스는 솔로 앨범을 계속 만들고 싶지만, 솔로 아티스트로서의 기대감은 그리 크지 않다고 얘기했다. 이것은 솔로 활동에 큰 비중을 두지 않겠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아울러 많은 아티스트와 작업하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한 과거의 활동들을 계속 이어간다는 계획도 밝혔다. 2012년 후지 록 페스티벌 라인업 발표 때 신작 소식을 알린 제임스는, 7월말에 열리는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에도 출연했다.

핫트랙스 매거진 2012년 7월호 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