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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cert

유투(U2) 내한공연 후기 “모두가 평등해질 때까지 우리 중 누구도 평등하지 않다”

2019년 12월 8일 일요일 고척돔

유투에 미쳐 정규 앨범은 물론 영상, 싱글, 부틀렉까지 사서 듣고 내한공연 보고 싶다며 울부짖던 시절이 있다. 정말 오래된 잡지 기사까지 구해서 완성한 스크랩북은 지금 봐도 재밌다.

문제는 지금이 2019년이라는 거. 티켓을 받고 공연이 일주일 정도 남았는데도 너무 안 설레는 거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티켓이 빠르게 매진되면 하루 더 추가한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남은 좌석이 많이 보였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대충 이런 차이
2009년 = 곧 한국에서 유투 공연을 보는 게 믿기지 않는다며 열심히 예습함
2019년 = 현실감 떨어지는 합리적 보수 정당 아저씨들 만나는 기분이라며 저녁 뭐 먹고 갈지 고민함

또 하나 웃겼던 건 유투 공연을 토요일로 알고 있었다는 거. (심지어 달력에도 토요일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문자 알림을 자세히 안 봤다면 혼자 황량한 고척돔 앞에서 이게 유투의 현실이라며 비웃고 더 크게 비웃음당할 뻔했다.

대낮부터 대기했을 스탠딩 관객들은 이날 정말 힘들었을 거 같다. (옷장에서 20년 만에 꺼낸 듯한 래틀 앤드 험 티셔츠 같은 거 입고 서성거리는 아저씨들 보였다면 'One' 이후 발표한 노래 모를 확률이 70% 이상이라고 추측해봅니다.)

공연은 30분 가깝게 지연됐고 공연장에서 막 틀어주는 노래 들으며 지루함을 달래야 했다. 보위 노래 흐를 때 공연장에 온 친구들로부터 메시지가 왔고, 급기야 퀸 노래까지 나왔다. 이러다 퀸이 먼저 공연하겠어...

 

Where the Streets Have No Name
With or Without You

[The Joshua Tree] 앨범 전곡 연주는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았다. 고척돔 사운드가 어김없이 나를 슬프게 했지만, 이제 슬퍼할 단계를 넘어선 보노의 보컬이 현장에선 더 괜찮게 들렸고 다른 멤버들의 연주는 기품있고 아름다웠다. 다른 세상에서 연주하는 듯한 에지의 기타 사운드를 듣다 보니 옛날 생각도 났고.

Running to Stand Still

개인적으로 좋았던 건 ‘Running to Stand Still’, ‘In God's Country’를 연주했을 때다. 보노는 존 레논 기일이라 존 이야기를 하고, 제대로 들은 건지 모르겠는데 서울에서 한 공연 중 최고라는 나름 웃기려는 멘트도 던졌다. (또 온다고 하셨으니 개그로 받지 않겠습니다)

Desire

Vertigo

스탠딩을 불태운 ‘Elevation’‘Vertigo’

Every Breaking Wave

(칭찬은 아니지만) 보노는 밥 딜런보다 노래를 잘합니다.

젊을 때는 우울하고 불친절해 보였던 아담이 이제 제일 귀엽게 보이는 멤버가 되었습니다.

에지는 30년 뒤에도 똑같을 거 같아요. 참고로 밴드에서 두 번째로 어린 멤버임

래리는 40년째 외모를 담당하고 있어요.

콜드플레이나 폴 매카트니 공연처럼 짜릿하고 감동적이지는 않았다. 늙은 건 감춰도 낡은 건 못 감추시기도 했고. 그들이 외치는 사랑과 평화가 현실적으로 와닿지 않는 사람도 많았을 듯. 공연 시작 지연 때문인지 셋리스트에 있었는데도 빠진 ‘Bad’는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을 거 같다.

하지만...

세상을 바꿔 가는 다양한 여성들을 기억하며 밴드가 직접 준비한 ‘Ultraviolet (Light My Way)’ 무대는 정말 특별했다. 서지현 검사, 나혜석, 박경원, 정경화, 해녀, 그리고 모두를 울컥하게 한 설리...

설리가 떠나고 이틀이 지난 밤 그를 추모하는 글을 구구절절 적다 지웠다. 그런 글이 또 누군가를 피곤하고, 슬프게 할 거 같아서. 대신 힘든 시간을 보냈고 지금도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분들이 마음을 잘 추스르기를 빌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약 한 달 뒤 또 다른 비보를 접하게 됐다. 현실로 받아들이기엔 여전히 너무 아프고, 두려운 일이다. 그런 일을 겪을 때마다 현실을 외면한 채 유사한 비극이 일어나질 않길 바라며 지내왔던 나였기에, 여전히 마음 한 부분이 쓰리고 막막할 친구들에게 별다른 위로를 건네지 못했다. 마주하기엔 아프고 피하기엔 너무 화나는 비극이니까.

우리 모두가 평등해질 때까지 우리 중 누구도 평등하지 않다

‘Ultraviolet (Light My Way)’ 무대 이야기를 접하고 손절 외친 사람들은 참 하찮고, 우스워 보였다. 최근까지 꾸준하게 유투를 들은 것도 아닐 테고. 유투한테 "록밴드가 왜 이리 정치적?"이라고 지적한 것만큼 웃겼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내 앞에서 공연 본 아저씨 두 명은 'With Or Without You' 이후 아는 노래가 없었는지 계속 휴대폰 켜고 놀다 'One'을 연주할 즈음에 공연장을 떠났다. (뭐하러 오셨는지)  

공연의 가장 큰 목적이 ONE.ORG 회원 모집은 아니었겠죠? 하지만 의심을 품으며 집에 왔습니다...
광화문 아닙니다...

복잡한 감정이 이상하게 규칙적으로 표출된 공연. 그래도 유투는 유투였다. 이번에 듣지 못해 아쉬웠던 곡들은 다음을 기약하며.

Setlist
01 Sunday Bloody Sunday
02 I Will Follow
03 New Year's Day
04 Pride (In the Name of Love)
(dedicated to John Lennon)
The Joshua Tree
05 Where the Streets Have No Name
06 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
(with "Stand By Me" snippet)
07 With or Without You
08 Bullet the Blue Sky
09 Running to Stand Still
10 Red Hill Mining Town
11 In God's Country
12 Trip Through Your Wires
13 One Tree Hill
14 Exit
(with "Wise Blood" and "Eeny… more )
15 Mothers of the Disappeared
16 Desire

Encore
17 Elevation
18 Vertigo
(with "She Loves You" and "… more )
19 Even Better Than the Real Thing
20 Every Breaking Wave
21 Beautiful Day
22 Ultraviolet (Light My Way)
23 Love Is Bigger Than Anything in Its Way
(with "All You Need Is Love" snippet)
24 One

  • ㅇㅇㅇ 2019.12.18 01:26

    화이트퀸 님도 다녀 가셨군요.
    제가 그 2시부터 지하주차장에서 줄서고, 스탠딩 입장도 서있던 90년대 록키드 였습니다.
    정말 허리가 끊어질거 같아서 죽을거 같았는데 일요일 피의 일요일 시작때부터 한 개도 안아팠네요.
    다행하게도 거의 맨 앞여서 레드존 안 부럽게 잘 즐기고 왔습니다. :)
    저도 이걸 가야하나...하고 시큰둥 했었는데, 보길 정말 잘했다 싶었어요. 퀸님 느낌과 같이 현장에서 듣는 보노의 음성은 멋지더군요. 영상으로 볼땐 갔네, 갔어... 했었는데. ㅎ

    • Favicon of https://whitequeen.tistory.com BlogIcon 화이트퀸 2019.12.24 09:05 신고

      스탠딩 분위기는 좌석과 전혀 달랐던 거 같습니다. 고생스러워도 정말 좋았을 거 같네요. :) (좌석은 확실히 현장감이 약했어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