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을 50장만 사겠다고 큰소리를 쳐놓고 105장이나 구매한 2017년이었다. 덕분에 40장을 추리는데도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언제나처럼 많이 들은 앨범을 중심으로 골랐기 때문에, 결과는 조금 의아할 수도 있다. 뭐, 어쩌겠습니까. 제가 피치포크 에디터는 아니잖아요.
1. Lorde – Melodrama
변화와 성장, 생생한 은유가 있는 스무 살 언저리의 달콤 쌉싸름한 기록은 완벽하다. 또한, 갓 데뷔한 로드에게 데이비드 보위가 건넨 ‘음악의 미래’라는 찬사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멜로드라마>로 멋지게 증명해냈다.
2. Bjork – Utopia
행복한 멜로디와 섬세한 구성으로 황홀감에 휩싸이게 된다. 위태로우면서도 결연하고, 따뜻한 앨범. 아름답고 신비한 비요크의 유토피아.
3. Slowdive – Slowdive
꿈결 같은 46분. 슬로우다이브를 알아도, 몰라도 빠져들 수밖에 없는 놀라운 앨범이다. 몇 번을 반복해서 듣기도 했던 ‘Sugar For The Pill’의 도입부는 지금도 나를 설레게 한다.
4. Charlotte Gainsbourg – Rest
복잡한 감정이 반영된, 놀랍고 변덕스러우면서도 유기적인 샤를로뜨 갱스부르 최고의 앨범. 아티스트의 자연스러운 진화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앨범으로 회자될 것이다.
5. Beck – Colors
벡을 특정 장르로 규정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Odelay]와 [Midnite Vultures], [Guero], [Morning Phase]를 모두 만든 장본인이 벡이다. [Colors]는 팝을 지향했던 [Guero]에 가깝지만, 현재 음악계의 흐름과 더 잘 맞는다. 벡은 특유의 다양성을 과시하는 ‘Colors’, ‘Seventh Heaven’, 탁월한 감각이 빛나는 ‘Dreams’, 도전적인 ‘Wow’, 유일한 슬로우 템포의 엔딩 트랙 ‘Fix Me’까지 전력으로 질주하며 ‘완벽한 팝 앨범’을 완성해냈다. 참고로 개인적인 추천곡은 ‘Dear Life’다.
6. Kendrick Lamar – DAMN.
눈부신 기교와 스토리텔링을 바탕으로 한 힙합 본연의 매력에 충실했고, 주제는 다양해졌다. 자신감과 불안감, 겸손과 교만 같은 양면성이 존재하는 청년의 복잡한 속마음과 함께 뒤얽힌 이야기는 풍부하고 다양한 함의를 갖는다.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졌지만, 위엄이 느껴진다.
7. Fleet Foxes – Crack-Up
개인적인 2011년 최고의 앨범이었던 [Helplessness Blues] 이후 6년 만이라 걱정이 앞섰는데, 플릿 폭시즈는 정체되지 않고 앞으로 더 나아갔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른 아침과 기막히게 잘 어울리는 포크 사운드.
8. Lana Del Rey - Lust for Life
이견이 없는, 라나 델 레이 최고의 앨범. 짧은 기간 동안 꽤 많은 앨범을 발표했는데도 진부함을 전혀 느낄 수 없는 것 또한 놀랍다.
9. Liam Gallagher - As You Were
혁신은 없다. 기교 또한 없다. 첫 싱글이며 톱 트랙인 ‘Wall Of Glass’부터 리암은 기세등등한 로큰롤을 선사할 뿐이다. 매우 전형적인 방식인데도 신선하게 다가온다. 여러 곳에서 공들인 흔적도 보인다. 역동적인 멜로디와 매력적인 보컬은 여전히 독보적이다. 갑작스러운 해체로 깊은 아쉬움을 남겼던 비디 아이의 음악적 성과를 제대로 승화한 리암의 첫 솔로 앨범은 더 반갑고, 감동적이다.
10. Tori Amos - Native Invader
[Night of Hunters]와 더불어 가장 사랑하는 토리 에이모스의 2000~2010년대 앨범으로 기억될 것이다. 말없이 감상하며 감탄하게 되는 장중한 서사시.
11. Cigarettes After Sex - Cigarettes After Sex
2000년대 초에 만났다면 지금보다 더 사랑했을 앨범. ‘올해의 몽환’으로 기억될, 아주 익숙해서 더 반가운 사운드.
12. Chilly Gonzales & Jarvis Cocker - Room 29
칠리 곤살레스와 자비스 코커가 완성해낸 예상조차 할 수 없었던 앨범. 침대맡에 두고 계속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13. LCD Soundsystem - American Dream
명료한 멜로디와 노랫말로 설득력을 과시하는 이 앨범은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음악을 선사했던 밴드가 이젠 과거를 돌아볼 여유도 생겼다는 것을 보여준다. 70~80년대와 현시대의 음악이 차분하게 융합된 사운드는 예상할 수 있던 것보다 더 신선하다.
14. Laura Marling - Semper Femina
로라 말링은 한결 편안하고 자신감 넘치는 음악들로 가득한 여섯 번째 정규 앨범으로 하나의 정점을 찍었다. 자연스레 조니 미첼을 떠오르게 되는 ‘Nouel’, 느리게 타오르는 로라의 블루스 ‘Nothing, Not Nearly’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
15. U2 - Songs of Experience
너무 평이하다는 평가도 있지만, 유투 팬이라면 환영할만한 앨범이다. 다소 실망스러운 최근 행보에도 불구하고 “좋은 걸 어떡해”라고 중얼거리게 될 정도로.
16. Arcade Fire - Everything Now
아케이드 파이어의 다섯 번째 앨범은 댄서블한 사운드로 화제를 모은 전작 [Reflektor]의 실험을 계승한다. 첫 싱글 ‘Everything Now’는 밝고 생동감 넘치는 댄스 팝으로 새 앨범의 기대를 높였다. 그러나 변화된 사운드와는 대조적으로, 노랫말은 사회 비판적 시각을 견지한다. 정보 과잉 시대의 보이지 않는 고통, 마약, 자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미국 사회를 통렬하게 비판한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사운드를 갖춘, 바로 지금 들어야 할 생생한 음악들이다.
17. The xx - I See You
두 번째 앨범을 제작할 때 느꼈던 부담감을 훌훌 털어낸 엑스엑스는 화려하고 강렬한 톱 트랙 ‘Dangerous’로 자신감을 드러낸다. 홀 앤 오츠의 ‘I Can’t Go For That (No Can Do)’를 샘플링한 첫 싱글 ‘On Hold’의 외향적이고 따뜻한 팝 사운드는 낯설거나 어색하지 않다. 가벼운 파티 음악으로도 손색없는 댄스 팝 ‘I Dare You’, 세련된 1980년대 팝을 발견한 것 같은 ‘Lips’의 감각도 예사롭지 않다. 밴드는 특유의 참신함을 잃지 않고 멋지게 도약했다.
18. Anathema - The Optimist
‘Leaving It Behind’를 듣고 “아나테마도 변화를 선택하는구나”라고 생각했으나, 이내 밴드가 지향했던 사운드로 돌아온 것을 보며 안도했다. 2010년대의 아나테마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다시 한번 증명하는 탄탄한 앨범.
19. Elbow - Little Fictions
놀라울 만큼 현재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가이 가비는 배우 레이철 스털링과의 결혼, 20여 년간 동고동락했던 드러머의 탈퇴, 데이빗 보위의 죽음 등 다양한 경험을 앨범에 녹여냈다. 풍요롭고 희망적인 톱 트랙 ‘Magnificent (She Says)’ 드러머의 부재를 의식이라도 한 듯 오히려 더 리듬을 강조한 ‘Gentle Storm’, ‘Firebrand & Angel’, 아늑하고 몽환적인 사운드를 선사하는 ‘All Disco’, ‘Head For Supplies’, 세상의 분열과 증오에 관해 이야기하는 ‘Trust The Sun’, 브렉시트 전후로 나눠 노랫말을 완성한 ‘K2’ 등은 엘보우라는 굳건한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8분을 훌쩍 넘기는 ‘Little Fictions’를 지나 ‘Kindling’에 다다르면 부정적인 기운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밴드 특유의 깊은 울림과 아름다운 세계에 다시금 감탄하게 된다.
20. Paramore - After Laughter
헤일리 윌리엄스는 남성 중심의 신(Scene)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는 것과 더불어 모든 일에 의문을 갖게 되었는데, 이런 혼란 속에서 ‘Hard Times’라는 상큼한 신곡을 완성했다. 미국 인디 록에서 영향을 받은 이 곡은 80년대 사운드를 지향한다. 예상치 못한 팝 사운드를 구체화한 ‘Rose-Colored Boy’, ‘Told You So’, 잔잔한 발라드 ‘26’ 등에서는 밴드가 추구한 새로운 사운드에 대한 확신을 느낄 수 있다. 또 한 번 기대치를 웃도는 탄탄한 팝 앨범.
21. Noel Gallagher's High Flying Birds - Who Built the Moon?
노엘 갤러거가 데이빗 홈즈 방식에 ‘적응하는 과정’이 뜻밖으로 다가오는 앨범. 익숙한 방식을 버리고 선택한 새로운 도전에 노엘은 큰 만족감을 표했지만, 무게감이 조금 떨어져 보이기도 한다.
22. Mew – Visuals
완성하는 데 1년도 걸리지 않았다고 밝힌 앨범. 간결하고, 각각의 곡이 하나의 챕터와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한 주의 피로를 나긋하게 풀어주기도 했던 ‘딱 내 취향’인 앨범. 콜드플레이의 [Ghost Stories]처럼 호불호가 갈릴 것 같지만, 누군가에겐 ‘베스트 오브 베스트’가 될 듯.
23. The National - Sleep Well Beast
4년이라는 제법 긴 공백이 느껴지지 않는다. 더 높은 곳을 향하는 내셔널의 도전.
24. Jay-Z – 4:44
아무런 기대 없이 듣다 화들짝 놀란 제이 지의 고해성사. 음악의 힘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25. Asgeir – Afterglow
시규어 로스가 그랬던 것처럼 점점 확장되어가는 아우스게일의 섬세한 음악 세계.
26. Phoenix - Ti Amo
심각한 상황에 힘을 빼고 유머러스하게 대응하는 피닉스의 센스. 밴드가 발표한 가장 사랑스러운 앨범으로 기억될 것이다.
27. Depeche Mode – Spirit
선 공개된 ‘Where's The Revolution’은 다소 실망스러웠지만, 앨범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최근에 발표한 앨범들보다 더 강렬하고, 날카롭다.
28. Sampha – Process
잘 만들어진 노래를 빼어난 보컬로 멋지게 소화해냈다. 샘파의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
29. The Shins – Heartworms
신즈가 발표한 앨범 중 가장 친밀하게 다가온다.
30. Passion Pit - Tremendous Sea of Love
과거만큼 화려하진 않아도 패션 핏 특유의 순도 높은 팝은 변함없이 매력적이다. ‘Hey K’, You Have The Right’로 이어지는 달콤함은 가장 먼저 추천하고 싶은 코스다.
31. Queens Of The Stone Age – Villains
특유의 우직한 행보로 이뤄낸 하나의 결실. 마크 론슨과의 만남도 좋은 선택이 되었다. 톱 트랙 ‘Feet Don’t Fail Me‘부터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앨범.
32. St. Vincent – Masseduction
빼어난 보컬과 탁월한 감각으로 완성한 팝 앨범. 개인적으로 세인트 빈센트가 발표한 정규 앨범 중 가장 듣기 좋았다.
33. Iron & Wine - Beast Epic
2007년 [The Shepherd's Dog] 이후 10년 만에 다시 서브 팝에서 발표한 솔로 앨범은 간소한 편성이 눈에 띈다. 모든 곡은 라이브로 녹음되었으며 별다른 기교와 기복 없이 전개된다. 은유적인 노랫말, 어두우면서도 따뜻한 선율로 잔잔한 위로를 건네고, 지나온 시간을 느긋하게 돌아보며 희로애락을 나눈 이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기도 한다. 엔딩 트랙 'Our Light Miles'는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집에서 느낄 수 있는 아늑함이 떠오르는 앨범을 마지막까지 빛내준다.
34. Nicole Atkins - Goodnight Rhonda Lee
니콜 앳킨스의 색깔이 좀 더 뚜렷하게 나타나는 고전적인 앨범으로 크리스 아이작과 합작한 톱 트랙 ‘A Little Crazy’부터 청자를 사로잡는다. 맡은 배역을 완벽하게 소화하는 배우처럼, 곡에 어울리는 목소리를 선사했던 특유의 매력적인 보컬은 더 깊어졌다.
35. Roger Waters - Is This the Life We Really Want?
예측할 수 있는 익숙함이 누군가에겐 반가움으로, 누군가에겐 실망으로 다가올 앨범. [Amused To Death]를 의식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만족스럽다.
36. Styx - The Mission
데니스 드영 없는 스틱스가 무슨 의미가 있냐며 싸늘한 시선을 보냈던 나를 반성하게 했다. 놀랍게도 1983년 [Kilroy Was Here] 이후 발표한 정규 앨범 중 가장 뛰어나다.
37. Bob Dylan – Triplicate
세 가지 테마로 나눈 앨범의 디스크당 평균 재생시간은 30분을 조금 넘긴다. 이는 ‘LP에 최적화된 길지 않은 앨범’을 만들고자 했던 의도가 반영된 결과다. 앨범은 완벽함이 아닌 자연스러움을 지향한다. 순조롭게 녹음을 마친 프랭크 시나트라의 ‘The September of My Years’나 ‘The Best Is Yet to Come’처럼 말이다. 어느덧 70대 중반에 접어든 밥 딜런이 열성을 다해 노래한 이 앨범은 과거의 즐거웠던 기억들을 돌이켜보는 회고록이 아닌, 생생한 현재를 담아낸 기록이다.
38. King Krule - The Ooz
얼핏 이상해 보이는 조합으로 조화를 이뤄낸, 상상력이 돋보이는 앨범.
39. Sam Smith - The Thrill of It All
샘 스미스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이별을 겪지 않았다면 이처럼 심금을 울리는 앨범을 완성할 수 있었을까 싶다. 외로우면서도 따뜻한 앨범.
40. Jamiroquai - Automaton
80년대 팝과 EDM을 바탕으로 자미로콰이 특유의 색깔을 녹여낸 타이틀곡이 마음에 들었다면, 최소 절반은 성공이라 할 수 있는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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