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에 펑크 리바이벌 붐이 일었다. 팝 펑크(네오 펑크)란 장르가 생겼고, 그린 데이(Green Day), 랜시드(Rancid), 오프스프링(Offspring) 등이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1970년대 같은 순수함은 찾아볼 수 없었고, 정치성과 사회성이 결여된 음악은 많은 비판을 받았다. 젊은 세대의 공감을 얻어냈지만 과거처럼 날카롭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기성세대가 외치는 ‘진짜 펑크’가 주목을 받았고, 비슷한 시기에 댐드(The Damned), 레인코츠(The Raincoats), 미스피츠(Misfits)가 재결성했다. 하지만 가장 큰 화젯거리는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 재결성이었다. 그들은 해체 후 제대로 합주도 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해체만큼 갑작스런 재결성이었지만, 이유는 명확했다. ‘단지 돈을 벌고 싶을 뿐’이라는 것. 매체들의 조롱이 쏟아졌고, 이에 존 라이든(John Lydon)은 엿이나 먹으라고 응수했다. 그들다운 요란한 컴백으로 이목을 집중시켰고, 한발 앞서 돈을 언급한 탓에 재결성을 둘러싼 추측은 난무하지 않았다.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이 성공을 거둔 것이다.
재결성 루머는 1992년부터 있었다. CD 시대의 완벽한 컬렉션인 「Kiss This」(1992)가 발매되었고, 싱글 <Anarchy In The UK>와 <Pretty Vacant>는 다시 영국 차트에 올랐다. 그러나 그 이상의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돈을 벌겠다며 벌인 1996년 재결성도 사실 커다란 부를 안기는 이벤트는 아니었다.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s)처럼 거대한 공연이 아니었고, 투어 기간도 그리 길지 않았다. 게다가 신곡 작업도 없었으며 런던 핀스버리 파크 공연을 녹음해 1달 만에 앨범으로 완성한 「Filthy Lucre Live」(1996)를 발표한 게 전부였다. (이 앨범은 영국 차트 26위에 올랐다.) 존의 돈 이야기는 일종의 농담이었을 뿐, 다른 멤버들도 크게 돈에 집착할 이유가 없었다. 밴드 해체 후 존은 퍼블릭 이미지 리미티드(Public Image Ltd.)로 꽤 성공한 상태였고, 다른 멤버들도 솔로 앨범과 세션 등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재결성이 있던 해에 스티브 존스(Steve Jones)는 뉴로틱 아웃사이더스(Neurotic Outsiders)로 인기를 끌었다. 이것은 듀란 듀란(Duran Duran)의 존 테일러(John Taylor), 건즈 앤 로지스(Guns N' Roses)의 더프 맥케이건(Duff McKagan), 맷 소럼(Matt Sorum)과 결성한 슈퍼 밴드였다. 앞서 1980년대에는 전 매니저 말콤 맥라렌(Malcolm Mclaren)과의 소송에서 승리하여 값어치 높은 섹스 피스톨즈 판권도 다시 찾았다.
말이 많았던 재결성은 ‘자신들을 위한 일’이었다. 아울러 펑크 록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진짜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 끔찍한 법정 문제로 해체했던 상황을 만회할 기회이기도 했다. 거친 입담도 여전했는데, 특히 돈과 명성을 꿈꾸는 팝스타와 정치적으로 인식하는 게 없는 밴드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밴드는 짧았던 ‘Filthy Lucre Tour’를 마치고 다시 사라졌지만, 2002년 그들만의 방식으로 여왕 즉위 50주년을 기념했다. 이때 재발매된 싱글 <God Save The Queen>은 영국 차트 15위에 올랐다. 그리고 2002년과 2003년, 동일한 라인업으로 몇 차례 공연을 펼쳤다. 2006년에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지만 행사 참석을 거부했다. 2007년에는 2개월간 ‘Holidays In The Sun’ 투어를 펼쳤고, 2008년 여름에는 각종 페스티벌에 참여했다. 대부분 유럽 공연이었지만, 일본에서도 공연을 가졌다.
최근에는 유니버설 뮤직과 계약을 체결하고 「Never Mind The Bollocks」를 재발매했다. 앞으로도 신곡 작업 가능성은 낮아 보이지만, 특별한 이유 없이도 공연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참고로 재결성한 퍼블릭 이미지 리미티드는 20년만의 신작 「This Is PiL」(2012)을 공개한 상태다.
재결성 이전 최고의 앨범
Never Mind The Bollocks, Here's The Sex Pistols (1977)
영국을 발칵 뒤집어 높은 ‘위험하고 위대한’ 앨범이다. 엘리트들이 록을 지배하는 것에 반발한 밴드는 스스로 보잘 것 없는 연주력을 인정하면서도 당당했다. 러브 송 대신 청년실업과 미국의 자본주의, 기독교 문화, 영국 황실의 무능함 등을 꼬집었고, <EMI>를 통해 자신들을 버린 소속사를 비판했다. 여왕을 비꼰 <God Save The Queen> 덕분에 칼과 병을 든 애국주의자들에게 습격을 당하기도 했다. 대책 없는 미래에 좌절하던 영국 청년들은 열광했고, 밴드는 이 짧고 굵은 앨범 하나로 펑크(Punk)의 전설이자 영웅이 됐다. 멤버들의 가장 큰 공통점은 서로를 미워했다는 것. 넘치는 분노와 증오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걸 이 앨범이 보여준다.
재결성 이후 최고의 앨범
Filthy Lucre Live (1996)
관객들의 거친 함성이 적절하게 섞인 재결성 라이브 앨범이다. 존의 목소리에서 세월이 느껴지지만, 크게 문제될 건 없다. 투박한 오프닝 <Bodies>부터 생생한 열기가 느껴진다. 단조롭고 힘찬 <Seventeen>도 반갑다. 리듬이 아바(Abba) 같다고 얘기하면 멤버들은 불쾌하겠지만, 비슷하다. 40세에 돌아왔다는, 스스로를 조롱하는 듯한 멘트에 이어 <Did You No Wrong>을 연주하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정규 앨범에는 실리지 않은 곡이다. <EMI>는 여전히 짜릿하고, 날카롭다. 앵콜은 <Anarchy In The UK>와 <Problems>다. 유일한 공식 라이브 앨범이지만, 음질과 현장감은 부틀렉을 연상시킨다. 그래서 더 매력적이다. 섹스 피스톨즈 공연에서 정교한 사운드와 감동적인 메시지를 기대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월간 핫트랙스 매거진 2012년 6월호에 쓴 글
'Column'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시 한국에 오는 오지 오스본(Ozzy Osbourne)의 콜래보레이션 살펴보기 (0) | 2014.06.14 |
---|---|
틴 아이돌에서 누구나 좋아하는 팝 그룹으로, 테이크 댓 (3) | 2014.02.27 |
Reunion 7 - 멈추지 않는 항해, 스틱스(Styx) (0) | 2014.01.27 |
Reunion 6 -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다, 밴 헤일런(Van Halen) (0) | 2013.11.02 |
굿바이, 루 리드(Lou Reed) (6) | 2013.10.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