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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퀸의 음악여행

약 80일간 경험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와 퀸 열풍 그리고 기현상 본문

음악/퀸(Queen)

약 80일간 경험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와 퀸 열풍 그리고 기현상

화이트퀸 2019.01.07 18:10

‘보헤미안 랩소디’ 개봉 이후 그와 관련한 기사 작성, 블로그 포스팅을 전혀 안 했다. 현명한 선택이었다. 2018년 한국의 모든 매체가 퀸으로 본전을 뽑으려는 거 같았으니까. 내가 기사를 쓰는 매체에도 퀸 관련 기사가 30개 이상 올라왔고 주변 사람들은 티브이, 라디오, 기타 행사 출연으로 정신없었다. 어디에도 나설 생각이 없었던 나는 아카이브 같은 존재로 주변인들에게 이런저런 ‘낡은 자료’만 제공했다. 이 포스팅 역시 정식 기사가 아니며, 지금까지의 아무 말 대잔치를 하나로 엮은 것이다. 이제 슬슬 열풍이 식을 때인 것 같아 시작한 일종의 정리.

1. 예상은 다 틀렸다.


▲ 영화 개봉 전에 찍은 홍보물. 이때만 해도 그렇게 잘될 영화가 아닌데 홍보를 아주 열심히 한다고 생각했다.

10월 31일에 개봉한 영화는 첫날 11만 관객을 동원했고, 나는 이 정도 프로모션에 퀸 인지도면 최소 100만은 넘길 거 같다는 ‘소심한 예상’을 했다.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하지만 10배 차이로 틀릴 것은 정말 예상 못 했다. 아마, 누구도 예상 못 했을 것이다.

예상치 못한 흥행으로 150만 관객을 넘겼을 때, 나는 이러다 200만도 넘을 수 있겠다고 예측했다. 그렇다. 여전히 소심했다.

영화는 무서운 기세로 300만을 넘겼고 ‘라라랜드’ 기록인 360만을 깰 수도 있겠다는 전망이 나왔다. 영부인 밴드 공연이 곧 매진될 것 같다는 얘기가 들렸고 내 블로그는 브라이언, 로저 검색 유입으로 방문자가 늘었다. 착실하게 망해가던 블로그가 영화 덕에 반짝 살아난 것이다. 정작 도움 되는 정보는 하나도 없다는 게 문제였지만.

장기 흥행으로 곧 500만을 돌파할 것이란 소식은 소심하게 100만은 넘을 거라 예상했던 나를 부끄럽게 했다. 그즈음 퀸을 잘 몰랐던 직장 동료는 내게 싱얼롱 3차를 찍는다고 자랑했다.

영화는 780만 국뽕 블록버스터 ‘디 워’의 기록까지 넘어섰다. 그리고 해를 넘겨서까지 살아남으며 천만 관객을 바라보게 됐다. 현재 추세라면 1월 15일 전후로 천만 관객을 돌파할 듯.

2. 영화 관람

개봉일부터 영화 어떠냐는 질문을 꽤 많이 받았는데, 나는 11월 2일에 봤다. “재미없더라도 박진감 있게 재미없자”는 꼬드김에 넘어가 아이맥스로. 

영화는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았다. 빈약한 서사를 음악으로 깨끗하게 잊었으니까. 출연 배우는 프레디만 닮은 게 아니었다. 브라이언, 존, 로저 모두 경악할 정도로 비슷했다. (개인적으로 존 디콘 섭외 과정이 제일 궁금했다) 유독 부자연스러웠던 건 프레디를 본뜬 라미 말렉의 치아 분장이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던 거 같은데.

고양이, 놀리기 & 애드리브 지분은 예상외로 컸다. (이건 트위터 감성이군) 팩트에 구애받지 않고 유연하게 이야기를 풀어낸 것도 좋은 선택이었다. 오히려 퀸 바이오를 꿰찬 사람들이 재미없다고 느꼈을 수도 있었겠다. 이미 200번은 본 것 같은 라이브 에이드는 완벽한 퍼포먼스 재현만으로도 벅찼다. “우리는 부적응자들을 위한 부적응자 밴드”라는 대사도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내가 어린 나이에 퀸을....)



▲ 보헤미안 랩소디 덕에 유튜브 뷰도 급증한 라이브 에이드 DVD. 퀸, 보위 공연이 있는 두 번째 디스크는 닳을 정도로 봤다.

▲ 아이맥스 포스터


▲ 음반 포스터

▲ 극장용 리플렛과 사운드트랙

▲ 포토 티켓

3. 프레디는 좋은데 동성애는 싫다?

프레디를 사랑하면서 동시에 성 소수자 혐오가 가능하다는 거 자체가 의아하다. 프레디를 소수자로 생각한 적 없다는 사람들의 주장도 이해할 수 없다.

슬프게도 프레디는 한국에서 꽤 오래전부터 조롱의 대상이었다. 어릴 때 퀸을 좋아한다고 하면 “그 에이즈로 죽은? 남자 밝히는 동성애자?” 같은 반응을 보인 사람이 꽤 많았으니까. 매체라고 다를 건 없었다. 유명 칼럼니스트가 아래와 같은 혐오 기사를 썼을 정도로. 더 충격적인 건 이 기사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별로 꺼내고 싶지 않은 주제였다. 하지만 “프레디는 어쩌다 남자를 좋아하게 됐냐”, “취향은 존중하지만, 남자끼리 키스하는 장면은 우리 정서에 안 맞는다,”, “I Was Born To Love You가 남자를 위해 쓴 곡이라니 충격이다”, “프레디가 게이든 아니든 노래 좋고 영화 재밌었다. 그거(동성애)에 빠져서 안 좋아진 게 너무 불쌍하다.” 같은 얘기를 2018년에도 듣는 건 조금 절망적이었다.

혐오하는 게 아니라면서 굳이 안 넣어도 될 문장 꿋꿋하게 넣는 걸 참 많이 봐왔다. 대놓고 혐오하는 것보다 더 잘 보이는데, 당사자는 자신이 매우 중립적이라고 착각한다. 혐오라는 단어가 와닿지 않는다면 비하라는 단어도 대입해보실 것을 권한다.

매년 퀴어문화축제에서 뵙는 반대편 여러분들이 보헤미안 랩소디 개봉 반대 집회 열지 않은 것을 고맙게 생각해야 할까? 하긴, 부채춤 추기엔 상영관이 너무 많고 공간도 협소하다.

4. 2차 관람

2차 예매는 스크린엑스를 선택했는데, 맞는 시간대가 없어 싱얼롱으로 관람하게 됐다. 개인적으로 싱얼롱 상영이 불안했던 이유는 순수하게 노래만 따라부르는 게 아닌, 실시간 중계하는 사람이 주변에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용산 CGV 관객들은 비교적 조용했다. 고양이만 나오면 어찌할 줄 모르는 사람들의 수줍은 합창과 웃음이 어우러진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스크린엑스라는 포맷의 새로움보다 2차 관람 자체의 즐거움이 더 컸고, 1초 정도 등장하는 보위도 드디어 확인했다. 하지만 브라이언 메이는 끝내 못 찾았다.

영화에 복제인간 심은 게 아닌가 싶은 ‘신기술 빌런’ 브라이언이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다. “그간 퀸 앨범, 영상 사느라 고생한 너희들을 위해 준비한 영화야. 아이맥스, 스크린엑스, MX 모두 보도록 해.”

5. 새로운 팬과 오래된 팬

영화 흥행으로 퀸에 입문하거나 다시 듣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퀸 열풍을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이 주변에 꽤 있다. 고증 문제가 있는 영화로 퀸을 잘못 알게 되는 걸 우려한다. 정규 앨범 하나 안 듣고 팬을 자처하는 것도 싫어한다. 하지만 나는 그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SNS(특히 트위터)로 온갖 이미지가 돌고 이런저런 이야기가 공유되는 지금의 상황이 아주 흥미롭다.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다. 전혀 다른 시선과 해석, 2차 창작도 흥미롭다. 비교적 최근에 만났던 보위 팬들처럼 새로운 퀸 팬들의 존재가 반갑다. 그들에게서 나는 또 많은 것을 얻고, 배우고 있다.

갑자기 비슷한 유형이 생각났다. 2013년 무렵 스타워즈에 입문한 나 같은 사람이 일부 스타워즈 마니아 눈에 아주 불편해 보였겠구나. 스타워즈도 잘 모르면서 라스트 제다이, 로그원 재밌다고 설쳤던 모습이.

물론 나도 어설프게 러닝셔츠 하나 걸친 관심병 환자가 외치는 "프레디 형님!" 소리는 이제 그만 들었으면 좋겠다. 아울러 나에게 퀸을 가르치려는 ‘퀸스플레인도’ 그만. 저도 퀸은 조금 알아요....


▲ 이건 프레디만 입도록 해요

6. 기현상



▲ 부가 영상으로 라이브 에이드 풀 버전 + 리허설이 수록되어 판매량 급증한 퀸 락 몬트리올 블루레이. 2009년 한국에서도 개봉했는데 관객은 2만 명을 못 넘겼다. ‘Under Pressure’ 초연과 최상의 보컬을 들려주는 ‘Save Me’ 등이 기억에 남는 퀸 최고의 공연 중 하나다. 


▲ 4~5년 전에 찍었던 퀸 앨범들. 퀸 소장품이 더 늘진 않겠다고 생각하며 사진을 찍었던 것 같은데, 지금 1.5배는 더 늘어난 것 같다. 



▲ 퀸 팬질을 나름 오래 했는데 미국 앨범 차트 10위권에 오른 것을 실시간으로 본 건 처음이다. 그것도 두 장이나.


▲ 파니니 집에서 ‘We Will Rock You’를 들었고 자리를 옮긴 카페에선 ‘Somebody To Love’가 나왔다. 여기저기서 비긴 어게인 사운드트랙 틀던 때가 생각났다. 그걸 퀸이 재현하다니.

영화 흥행으로 새로운 팬이 많아진 건 아주 반가운데 녹슨 숟가락 얹는 퀸 & 문화 전문가 범람은 안 반갑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인 거다.

강남 스타일 열풍 = 에헴, 사실 저는 어느 정도 예견했는데 이게 사회현상과 정치...
BTS 열풍 = 에헴, 사실 저는 어느 정도 예견했는데 이게 사회현상과 정치...
퀸 열풍 = 에헴, 사실 저는 어느 정도 예견했는데 이게 사회현상과 정치...

‘왕년’의 전문가 선생님들, 무능 기부는 이제 그만요.





▲ 친구 잘 만난 덕에 이런 행운이 생겼다. 보헤미안 랩소디 일본 리플렛과 팝업스토어에서 판매했던 책자를 받았다. 일본의 인쇄물 퀄리티란!

MBC 스페셜 ‘내 심장을 할퀸(Queen)’ 다큐가 아쉬웠다는 의견이 많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다큐에 왜 홍석천이 나오고 굳이 동성애와 엮어야 했냐는 비판에는 동감할 수 없다. 또한, 영화로 퀸에 입문한 팬들을 보는 게 특히 반갑고 즐거웠던 나로서는 또 시작된 부심(너희들이 퀸 노래를 알기나 해?)이 반갑지 않았다. 참고로 내가 이 다큐에 출연했다면 ‘퀸 주접 팬 28.jpg’로 박제될 뻔....



▲ 다 아는 사람들이구먼

티켓이 잘 안 팔렸다고 들은 퀸 트리뷰트 밴드 더 보헤미안스 내한을 하루 앞두고 로저 테일러가 극비리에 입국했다는 가짜뉴스가 떴다. 소동은 몇 시간 만에 끝났지만, 한국 매체의 수준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촌극이었다. 소동을 정리한 기사 [ 링크 ]  

2019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보헤미안 랩소디가 드라마 부문 작품상을, 라미 말렉은 남우주연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왜 그랬을까....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나 빌보드 어워드 정도면 될 앨범에 덜컥 그래미 트로피 안긴 것처럼. 더 까놓고 말하자면, 노미네이트 만으로도 충분한 영화였다.

또 생각나는 게 있으면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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