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는 내한공연이 부쩍 늘어 공연장을 자주 찾지만, 음악 바에서 좋아하는 곡들을 ‘라이브 버전’으로 신청했던 재미와 감동 또한 잊지 않고 있다.
100% 라이브로 구성된 라이브 앨범을 지금도 유별나게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공연장 못지않은 현장감, 예상치 못한 즉흥 연주와 코멘트를 언제든 편하게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제법 다양한 라이브 앨범을 보유하게 되었고, 소개하고 싶은 앨범도 많아졌다.
이번에 소개할 것은 2000년대 초중반에 발매된 라이브 앨범이다. 예전 공연을 뒤늦게 앨범으로 발매한 것도 리스트에 포함했기 때문에 모두 2000년대에 열린 공연은 아니라는 것을 참고해주셨으면 한다.
1. 전설의 밴드가 남긴 위대한 기록,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하우 더 웨스트 워즈 원(How The West Was Won)> 2003년 발매
수없이 많았던 공연에 비해 라이브 앨범은 유독 적었던 레드 제플린이 팬들의 오랜 갈증을 해소해준 세 장짜리 앨범이다. 1972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펼친 공연을 편집하여 수록하였으며, 밴드의 최전성기 연주를 들을 수 있어 흥미롭다.
로버트 플랜트(Robert Plant)가 키를 낮추지 않고 노래하는 ‘이미그랜트 송(Immigrant Song)’, ‘블랙 독(Black Dog)’ 등이 강한 인상을 남기며, 목가적인 ‘고잉 투 캘리포니아(Going To California)’, ‘댓츠 더 웨이(That's The Way)’를 함께 수록하여 앨범은 더 빛이 난다.
로큰롤 메들리를 더해 23분간 연주하는 ‘훌 로타 러브(Whole Lotta Love)’, 윌리 딕슨(Willie Dixon)의 ‘브링 잇 온 홈(Bring It On Home)’은 라이브의 진가를 확인시켜주기에 충분하다. 본 앨범은 직접 프로듀싱한 지미 페이지(Jimmy Page)가 “이것은 레드 제플린 최고의 걸작”이라고 말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레드 제플린 팬이라면 반가워할 소식이 하나 있다. 1997년 발매된 BBC 세션 확장판인 <컴플리트 비비씨 세션(Complete BBC Sessions)>이 오는 9월 16일 발매된다.
2. 유쾌하고 역동적인 무대를 선사하는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i Peppers)의
<라이브 인 하이드 파크(Live In Hyde Park)> 2004년 발매
올해 지산 밸리 록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에서 녹슬지 않은 퍼포먼스를 선사한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2004년 6월 영국 하이드 파크 공연을 수록한 첫 공식 라이브 앨범이다.
‘캔 스탑(Can't Stop)’, ‘어라운드 더 월드(Around The World) 같은 역동적인 곡들로 초반부터 분위기를 달구는 본 앨범은 <캘리포니케이션(Californication)>(1999)과 <바이 더 웨이(By The Way)>(2002)에서 많은 곡이 선택되었다.
컨디션에 따라 기복이 있는 앤소니 키에디스(Anthony Kiedis)는 히트곡 ‘스카 티슈(Scar Tissue), ’아더사이드(Otherside)‘, ’캘리포니케이션(Californication)‘ 등을 안정적으로 소화한다. 스튜디오 버전보다 더 강렬한 ‘바이 더 웨이(By The Way)’, 화려한 리프와 코러스로 분위기를 살린 ‘포춘 페이디드(Fortune Faded)’, 플리(Flea)가 트럼펫 솜씨를 뽐내는 ‘플리스 트럼펫 트리티드 바이 존(Flea's Trumpet Treated By John)’도 흥미롭다.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언더 더 브릿지(Under The Bridge)’와 ‘기브 잇 어웨이(Give It Away)’가 장식한다. 안정기에 접어든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열정적인 무대를 만끽할 수 있는 앨범이다.
3. 결성 40주년을 자축하는 영원한 악동 밴드 롤링 스톤즈(The Rolling Stones)의
<라이브 릭스(Live Licks)> 2004년 발매
결성 40주년 기념 베스트 앨범 <포티 릭스(Forty Licks)> 출시 후 펼친 공연을 편집한 앨범이다. 시디 두 장에 대표곡과 덜 알려진 곡들을 나눠서 수록한 것이 눈에 띈다.
첫 번째 디스크는 히트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는 전혀 노쇠하지 않았다고 외치는 것 같은 ‘스트리트 파이팅 맨(Street Fighting Man)’, 여전히 공연장에서 인기가 좋은 ‘스타트 미 업(Start Me Up)’, 쉐릴 크로(Sheryl Crow)가 게스트로 참여한 ‘홍키 통크 위민(Honky Tonk Women)’ 등이 돋보인다.
지금까지 오피셜 라이브 앨범에서 한 번도 공개되지 않은 곡들을 대거 수록한 두 번째 디스크는 더 매력적이다. 10분간 뜨겁게 연주하는 ‘캔 유 히어 미 노킹(Can't You Hear Me Knocking), 키스 리차드(Keith Richards)가 노래하는 블루지한 발라드 ’더 니어네스 오브 유(The Nearness Of You)‘, 블루스 제왕 비비 킹(B.B. King)의 고전을 커버한 ’록 미 베이비(Rock Me Baby)‘ 등은 앨범을 더 빛나게 한다.
자연스레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몽키 맨(Monkey Man)’, ‘록스 오프(Rocks Off)’ 같은 고전 레퍼토리의 감동도 빼놓을 수 없다. 롤링 스톤즈의 오랜 팬이라면 더더욱 놓치지 말아야 할 앨범이다.
4. 확실한 팬 서비스로 폭발적인 인기에 화답한 린킨 파크(Linkin Park)의
<라이브 인 텍사스(Live In Texas)> 2003년 발매
2003년 10월, 한국 팬들과 처음 만난 린킨 파크는 또 하나의 큰 선물을 안겼다. 내한공연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첫 라이브 앨범을 발매한 것이다.
앨범은 공연의 하이라이트를 수록한 CD와 좀 더 많은 곡을 들을 수 있는 DVD로 구성되었다. 밴드와 스타디움을 가득 채운 관객들은 시작부터 폭발하며 엄청난 열기를 내뿜는다. 보컬리스트 체스터 베닝턴(Chester Bennington)은 무대를 가로지르며 ‘페이퍼컷(Papercut)’을 열창하고, ‘런어웨이(Runaway)’를 스튜디오 버전보다 더 극적으로 소화하며 뛰어난 호흡을 과시한다.
관객들과 함께 부르는 히트곡 ‘크롤링(Crawling)’, ‘인 디 엔드(In The End)’는 본 공연의 정점으로 볼륨을 높이게 한다. 가만히 듣고만 있어도 땀에 흠뻑 젖을 것 같은 강렬한 라이브 앨범이다. 참고로 린킨 파크는 현재 일곱 번째 정규 앨범의 마무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5. 초심을 잃지 않았던 소박하고 정직한 밴드 소울 어사일럼(Soul Asylum)의
<애프터 더 플루드(After The Flood)> 2004년 발매
다섯 번째 정규 앨범 <그레이브 댄서스 유니온(Grave Dancers Union)>(1992)으로 기나긴 무명생활을 청산하게 된 소울 어사일럼은 1997년, 수해를 당한 그랜드 폭스에서 위문 공연을 펼쳤다. 공연 장소는 놀랍게도 지방 고등학교의 무도회장이었다. 부와 명성을 얻은 밴드의 뜻밖의 행보는 화제를 모으기에 충분했고, 뒤늦게 실황 앨범으로 공개되었다.
레퍼토리는 매우 만족스럽다. 히트곡 ‘런어웨이 트레인(Runaway Train)’, ‘미저리(Misery)’, ‘블랙 골드(Black Gold)’ 등이 빠짐없이 수록되었으며 앨리스 쿠퍼(Alice Cooper)의 ‘스쿨스 아웃(School's Out), 글렌 캠벨(Glen Campbell)의 ’라인스톤 카우보이(Rhinestone Cowboy)‘ 같은 커버곡도 흥미롭다.
가장 아름다운 곡은 차분한 발라드 ‘더 게임(The Game)’이다. 화려하지도, 세련되지도 않은 밴드 특유의 소박한 사운드는 누군가를 위로하며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지금 이 앨범을 들으면 천천히 달리는 기차를 타고 시간여행을 떠나는 기분이 든다.
6. 영국 노숙자들도 다 아는 노래를 만든 오아시스(Oasis)의
<퍼밀리어 투 밀리언즈(Familiar To Millions)> 2000년 발매
오아시스의 2000년 7월 웸블리 스타디움 공연을 수록한 첫 라이브 앨범이다. 발매 당시 평단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지만, 팬들의 강한 애착을 드러냈다.
갤러거 형제에게 립서비스 따위는 없다. 가끔 던지는 멘트는 무례한 데다 리암 갤러거(Liam Gallagher)의 컨디션 또한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그래서 이 앨범은 더 오아시스답고, 매력적이다.
‘원더월(Wonderwall)’, ‘롤 위드 잇(Roll With It)’, ‘리브 포에버(Live Forever)’ 같은 히트곡은 물론 다신 연주하지 않을 것 같은 ‘후 필즈 러브(Who Feels Love?)’, ‘스탠 바이 미(Stand By Me)’까지 포함된 레퍼토리는 제법 친절하다.
노엘과 리암이 곡을 나눠 부르는 '액퀴어스(Acquiesce)', 수만 관객의 합창이 가슴을 요동치게 하는 ‘돈 룩 백 인 앵거(Don’t Look Back In Anger)’, 오아시스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로큰롤 스타(Rock N’ Roll Star)‘는 아직 해체 상태인 그들을 더 그립게 한다.
7. 최고의 공연으로 앨범의 부진을 만회했던 퀸(Queen)의
<퀸 온 파이어: 라이브 앳 더 보울(Queen On Fire: Live At The Bowl)> 2004년 발매
실험적인 앨범 <핫 스페이스(Hot Space)>(1982)의 반응은 미지근했지만, 투어는 뜨거웠다. 특히 유럽 투어의 마지막을 장식한 밀턴 케인스 공연에서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는 펄펄 날아다녔다. 그리고 그 ‘역사의 현장’은 뒤늦게 앨범 발매라는 결실로 이어졌다.
짜릿한 오프닝 ‘플래시/더 히어로(Flash/The Hero)’부터 팬들을 사로잡는 앨범은 퀸 최고의 라이브 중 하나로 평가받는 ‘섬바디 투 러브(Somebody To Love)’까지 숨돌릴 틈을 주지 않는다.
저평가된 신곡 ‘액션 디스 데이(Action This Day)’, ‘스테잉 파워(Staying Power)’, ‘백 챗(Back Chat)’ 등도 강한 인상을 남긴다. 설명이 필요 없는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를 연주할 때 프레디는 오히려 음을 높여서 노래하고, ‘위 아 더 챔피언스(We Are The Champions)를 연주할 때까지 힘을 잃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기억하는 것은 1986년 웸블리 공연이지만, 이 앨범을 들으면 생각이 바뀔 수도 있다. 100분이라는 시간은,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지나간다.
오마이 뉴스에 쓴 기사 [ 링크 ] [ 네이버 ] [ 다음 ]
+ 커뮤니케이션 미스로 머리말이 빠지고, 편집자님이 "2000년대 대표하는 '레전드' 명반 베스트 7"로 제목을 수정하여 네이버에서 욕을 많이 먹었다. (제목은 뒤늦게나마 수정되었고, 머리말도 포함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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