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몰입할 수 있어서 행복한 음악, 시규어 로스(Sigur Ros)의 'Valtari'

01 Eg anda (I Breathe) 6.15
02 Ekki Mukk (Not a Sound) 7.45
03 Varud (Caution) 6.37
04 Rembihnutur (Tightly Knotted) 5.05
05 Daudalogn (Calm Death) 6.37
06 Vardeldur (Campfire) 6.08
07 Valtari (Roller) 8.19
08 Fjogur piano (Four Pianos) 7.50

조용히 몰입할 수 있어서 행복한 음악
시규어 로스(Sigur Ros)의 새 앨범 [Valtari]가 발매됐다. 여섯 번째 정규 앨범이며 [Med sud i eyrum vid spilum endalaust] 이후 4년만의 신작이다. 평균 3년 주기로 앨범을 냈던 예전보다 공백이 길었다. 그렇지만 너무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진 않는다. 지난 4년간 시규어 로스 혹은 시규어 로스와 가까운 음악들을 계속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욘시(Jonsi)의 솔로 앨범 [Go]가 2010년 발매됐고, 같은 해에 [Go Live]도 출시됐다. 욘시는 그해 11월 한국에서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음악적으로 다른 느낌은 있었지만 비슷한 감동을 선사했다. 그리고 작년에는 욘시가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We Bought A Zoo)’라는 영화의 사운드트랙을 발표했다. 국내에서도 많이 알려진 시규어 로스의 ‘Hoppipola’를 수록했고, 신곡도 만날 수 있었다. 차분한 'Evin Endar'에는 시규어 로스의 숭고함이, 화려한 ‘Gathering Stories’에는 욘시 솔로 작품의 역동적인 느낌이 살아있었다. 또한 시규어 로스의 첫 라이브 앨범 [Inni]도 작년 말에 공개됐다. 영국 런던 알렉산더 궁에서 펼친 공연이며, CD 2장과 DVD 1장으로 구성된 호화로운 패키지였다. 시규어 로스 팬들은 그리 지루하지 않은 4년을 보낼 수 있었다.

시규어 로스 팬들에게 지난 4년은 그리 지루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이번 앨범은 애초부터 계획된 게 아니다. 과정은 매우 자연스러웠지만, 많은 혼란과 좌절도 있었다. 여러 개의 싱글보다 하나의 앨범 가치가 높은 밴드는 좋은 곡들이 쌓여있다고 해서 좋은 앨범을 뚝딱 완성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시규어 로스도 그런 경우다. 중심을 잡고 하나의 길을 만들어가기까지 상당히 애를 먹었다. (앨범에 수록된 많은 곡들은 2008년 이전에 만들어졌다.)

이 앨범에는 평론가들을 흥분시킬 파격적인 요소가 없다. 5~8분대의 곡들을 수록한 54분짜리 앨범의 움직임은 매우 느리고 정적이다. [Takk...]와 [Med sud i eyrum vid spilum endalaust]에서 느낄 수 있던 활기와도 거리를 둔다. 조금은 어둡고 관조적이다. 아득한 풍경을 만들어내는 첫 싱글 ‘Ekki Mukk’가 ‘압축된 설명’을 제공하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장엄한 클리이막스를 기대했던 걸까, 예전 느낌과 가장 흡사한 ‘Varud’는 압도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 고요한 울림으로 다가오는 ‘Vardeldur'는 [Inni]의 엔딩 타이틀로 썼던 곡이다. 타이틀곡 [Valtari]는 8분을 넘기는, 앨범 내에서 가장 긴 연주곡이다. <Daudalogn>에서 언급된 ’숨 막힐 듯한 고요‘는 누군가를 감동시키고,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개인적인 생각일수도 있지만, [Valtari]는 시규어 로스 역사상 가장 우아하고 아름다운 기록이다. 아름다운 풍경을 말없이 바라보듯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음악을 들으면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너무 많아진 세상인데, 이 앨범을 들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조용히 몰입할 수 있어 행복한, 내가 원하고 기다렸던 시규어 로스의 음악이다. 

참고.
*사전 예약으로 판매한 앨범에는 2개의 보너스 트랙 ‘Kvistur’, ‘Logn’이 수록됐다. 차라리 모르는 게 좋을 뻔했다.  
*앨범은 미국 차트 7위, 영국 차트 8위로 데뷔. 미국에서는 처음으로 Top 10에 진입한 앨범이 됐다.
*시규어 로스는 2012 섬머소닉에 출연한다. 이제 한국만 추가하면 된다. 부담스럽다면, 단독공연도 좋다. 둘 다 해주면 정말로 좋다. 꼭 한국에 왔으면 좋겠다.

이 앨범들을 다시 들으며 예습할 수 있기를...

Sigur Ros - Ekki mukk from Sigur Rós on 시규어 로스의 첫 싱글 뮤직비디오

Written By 화이트퀸 (styx020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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