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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영화를 뛰어넘는 실험과 쾌락에 빠진 노이즈, 케미컬 브라더스의 'Hanna' O.S.T



 
Hanna O.S.T (2011)
01 Hanna’s Theme
02 Escape 700
03 Chalice 1
04 The Devil is in the Details
05 Mapsounds Chalice 2
06 The Forest
07 Quayside Synthesis
08 The Sandman
09 Marissa Flashback
10 Bahnhof Rumble
11 The Devil is in the Beats
12 Car Chase (arp worship)
13 Interrogation Lonesome Subway Grimms House
14 Hanna vs. Marissa
15 Sun Collapse
16 Special Ops
17 Escape Wavefold
18 Isolated Howl
19 Container Park
20 Hanna’s Theme Vocal Version

케미컬 브라더스 최초의 영화음악
벌써 2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맨체스터에서 만난 두 남자는 ‘화학 형제’가 되어 역동적인 비트들을 쏟아냈다. 그루브와 에너지가 넘쳤고, 중독성이 강했다. 그것에 빠져들수록 위험한 약물을 상습적으로 복용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우려했던 부작용은 없었다. 만약 그들의 스테이지를 직접 경험했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케미컬 브라더스(The Chemical Brothers)는 1995년, 데뷔앨범 ‘Exit Planet Dust’를 공개한 이래 총 일곱 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했다. 거기에 하나의 리믹스 앨범과 두 개의 베스트 앨범이 더해졌고, 3년 이상의 공백을 두지 않으며 꾸준히 활동했다. 한번쯤 겪게 되는 슬럼프나 구설수도 그들을 피해갔다. 앨범의 완성도는 늘 일정수준 이상을 유지했다. 그나마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던 것은, 탐 로울랜즈(Tom Rowlands)의 ‘넓어진 이마’뿐이었다.

케미컬 브라더스는 2010년, 일곱 번째 앨범 ‘Further’를 공개했다. 외부 뮤지션의 참여 없이 둘이서 완성한 최초의 앨범이었다. ‘비트’보다 ‘소리’에 더 치중한 실험적인 작품이었고, 그래서인지 매체의 반응은 다소 엇갈렸다. 개인적으로는 이 앨범이 아주 마음에 들었는데, 특히 노이즈와 몽환, 비트가 섞인 대곡 ‘Escape Velocity’가 인상적이었던 환상의 일렉트로닉 앨범이었다. ‘Further’가 작년 6월에 발매되었으니, 지금 소개할 ‘Hanna (O.S.T)’는 1년만의 신작인 셈이다. 하지만 정식 발매에 앞서 지난 3월, 아이튠즈로 음원이 독점 공개되었고 시기적으로 놓고 보면 ‘Further’와 거의 맞물린다. 음악적 지향점 또한 비슷하다.


영화 ‘오만과 편견’, ‘어톤먼트’, ‘솔로이스트’의 감독 조 라이트(Joe Wright)의 신작 ‘한나(Hanna)’는 주류의 탈을 쓴 비주류 영화 같았다. (국내에서는 지난 4월에 개봉, 20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 실패) 케미컬 브라더스도 사운드트랙은 처음이었다. 영화는 액션 스릴러물로 포장됐지만, 잔혹동화로 어긋나는 모순을 저지른다. 핵심은 복수도, 액션도 아니다. 세상에 뛰어든 16세 소녀의 성장기다. 역시 돋보이는 것은 ‘영상’과 ‘음악’인데, 감독과 뮤지션의 조화는 ‘개별적 실험’에서 비롯된다. ‘각자의 길’을 걷다 ‘동행의 길’을 찾는 과정이 음악에, 보다 선명한 결과는 영화에 담겨있다. 나처럼 음악을 먼저 듣고 후에 영화를 관람하는 것은, 음반을 먼저 들은 후에 뮤직비디오를 관람하는 것과 흡사하다. 영화를 위한 음악이지만, 현재의 케미컬 브라더스 음악 방식을 고수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말이다.

‘중독’에서 ‘몰입’으로 변화하는 과정
가냘프게 흐느끼는 듯한 ‘Hanna’s Theme’와 함께 열리는 새로운 세계는 이국적인 비트의 ‘Escape 700’으로 이어져 본격적으로 케미컬 월드를 실감할 수 있게 한다. 신디사이저 중심으로 실험을 감행한 ‘The Devil is in the Details’는 중반부에 ‘The Devil is in the Beats’를 배치해 좀 더 익숙한 형태로 재생된다. 노이즈와 비트가 결합된 ‘Bahnhof Rumble’과 회전하듯 강렬한 비트의 ‘Car Chase (Arp Worship)’, ‘Escape Wavefold’도 실험적이다. 멜로디가 거의 제거된, 소음에 가까운 소리의 집요함은 타의적 중독에서 자의적 몰입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만들어낸다. 이것은 비트에 의존했던 과거와 소리에 집중하는 현재의 차이이기도 하다. 신비감이 느껴지는 ‘The Forest’, ‘The Sandman’, ‘Interrogation Lonesome Subway Grimms House’와 ‘Marissa Flashback‘, ‘Special Ops’, ‘Isolated Howl’의 노이즈가 춤출 때 우리는 더욱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2분짜리 영화 트레일러에 효과적으로 사용된 ‘Container Park’는 긴박함과 긴장감에 더한 약간의 폭발력이 ‘액션 스릴러’라는 장르로 포장된 영화의 외형과 멋지게 일치한다. 결국엔 그 장르를 비틀어버렸지만 말이다. 대미를 장식하는 ‘Hanna’s Theme Vocal Version’ 목소리의 주인공은 미국 출신 싱어송라이터 스테파니 도슨(Stephanie Dosen)이다. 아늑하고 신비하면서도 촉촉하게 젖는 느낌이 왠지 매시브 어택(Massive Attack)의 음악과 닮았다. (그녀는 매시브 어택 라이브와 앨범에 참여한 경력이 있다) 이 곡은 킬러의 이미지가 아닌, 16세 소녀 한나와 매치된다. 
 
영화 초반에 주인공 한나가 아버지에게 음악이 무엇이냐고 묻는 장면이 있다. 그러자 그녀의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한다. “음악은 소리의 조합이다. 자신의 감정이나 사물을 아름답게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이처럼 알게 모르게 영화는 음악을 의식한다. 설령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이것은 케미컬 브라더스 최초의 ‘영화음악’이며 동시에 ‘새 앨범’이니까.



천하의 노엘 갤러거(Noel Gallagher)도 반한 케미컬 브라더스
최근 기자회견을 통해 솔로 앨범을 발표하겠다고 밝힌 오아시스(Oasis)의 노엘 갤러거도 케미컬 브라더스에게 완전히 반했다. 노엘은 1995년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에서 그들을 만나 함께 작업하고 싶다는 의사를 먼저 밝혔다. 결국 그들의 첫 합작품인 ‘Setting Sun’이 완성됐고, 케미컬 브라더스 최초의 No.1 싱글이 되었다. 이후 노엘은 그들과 한 곡 더 같이 하고 싶다 말했고, ‘Let Forever Be’라는 또 하나의 Top 10 싱글을 완성했다. 2008년에는 오아시스의 일곱 번째 앨범 ‘Dig Out Your Soul’에 ‘Falling Down’이란 곡을 수록했는데, 그것은 노엘이 오랫동안 만들고 싶어했던 ‘드론 팝’이었다. ‘Setting Sun’과도 닮았던 이 곡은 노엘이 직접 노래했고, 케미컬 브라더스의 리믹스 버전을 첫 싱글 ‘The Shock Of The Lightning’에 수록했다.



2011년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케미컬 브라더스
케미컬 브라더스는 2011년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에 헤드라이너로 출연한다. 2007년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이후 4년 만에 한국을 방문하는 것인데, 이번에도 첫째 날인 금요일이다. 앨범 특성상 ‘Hanna’의 곡들이 연주되진 않을 예정이지만, 최근작 ‘Further’에서는 제법 많은 곡들이 선택될 것이다. 잘 아시다시피 그들의 공연은 능동적일수록 더 즐겁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엄청난 관객들을 보며 멀뚱하게 서있지만은 못할 테니까. 7월 29일, 국내 최대 규모의 야외 클럽이 열린다. ‘Block Rockin' Beats’가 흐를 무렵, 과연 사람들이 제정신일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케미컬 브라더스의 과거와 현재

 Brotherhood (2008)
가장 간명한 방법으로 케미컬 월드에 입문하도록 돕는 베스트 앨범이다. ‘Hey Boy Hey Girl’과 ‘Block Rockin' Beats’, ‘Galvanize’와 같이 크게 히트한 곡들을 만날 수 있고, ‘Leave Home’과 빅 비트로 명명된 ‘Chemical Beats’ 같은 초창기 곡들도 수록하고 있다. 노엘 갤러거와 함께한 ‘Setting Sun’, ‘Let Forever Be’를 비롯하여 플레이밍 립스(Flaming Lips)가 참여한 ‘The Golden Path’, 뉴 오더(New Order)의 버나드 섬너(Bernard Sumner)가 참여한 ‘Out Of Control’ 등 수록된 곡의 절반 이상은 게스트 뮤지션이 참여했다. 형제들만의 사운드를 맛볼 수 있는 ‘Star Guitar’와 ‘Saturate’는 놓쳐선 안될 곡들이다. [ 싸이월드 뮤직 링크 ]

 Further (2010)
앞서 언급했듯이 케미컬 브라더스의 현재를 말해주는 황홀한 일렉트로닉 앨범이다. ‘Snow’와 ‘Escape Velocity’가 연결되는 초반부는 아찔하고도 짜릿한 사이키델릭과 노이즈가 결합된다. ‘Star Guitar’처럼 몽환적인 ‘Another World’를 지나 노이즈가 비트를 압도하는 ‘Dissolove’이 흐르고 기존 팬들은 물론 라이브에서도 열광적인 반응이 예상되는 ‘Horse Power’, 사이키델릭 판타지로 인도하는 ‘Swoon’을 통해 그들만의 실험을 이어간다. 소리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이 이처럼 독창적인 사운드 스케이프를 창조해냈다. [ 싸이월드 뮤직 링크 ]

추천곡
Escape 700
The Devil is in the Details’
Car Chase (Arp Worship)
Container Park’
Hanna’s Theme Vocal Version

추천앨범
옐로우 몬스터즈 - 2집 - Riot! [ 싸이월드 뮤직 링크
David Cook - 2집 - This Loud Morning  [ 싸이월드 뮤직 링크
T.A-COPY - The Restoration [ 싸이월드 뮤직 링크
Jackie Evancho - 1집 - Dream With Me [ 싸이월드 뮤직 링크
One Ok Rock - One Ok Rock Selection [ 싸이월드 뮤직 링크

본 리뷰는 제가 싸이월드 뮤직 (Cyworld BGM) 스페셜 섹션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저는 이주의 앨범으로 케미컬 브라더스의 'Hanna' OST를 선정했습니다. 개편된 싸이 BGM 스페셜 섹션에는 음악평론가 배순탁, 뮤지션 이한철, 정지찬, 빅마마의 이지영 등 유명한 분들의 다양한 음악 이야기들이 연재되어 여러모로 흥미롭습니다. 저 또한 이주의 앨범과 뮤직에센셜에서 연재를 하고 있습니다. 

매체가 웹인만큼 이왕이면 싸이월드 뮤직 페이지에서 많이 봐주시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칼럼 원문을 보고 싶으신 분은 여기를 클릭해 주세요. 참고로 2011년 7월 첫째 주 이주의 앨범이었습니다.






Written By 화이트퀸 (styx020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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