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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Reunion 4 - 불행했던 밴드의 유일한 행복은 음악, 버브(The Verve)


영국 맨체스터 위건에서 결성된 그룹 버브(The Verve)에게는 늘 불운이 뒤따랐다. 평단의 극찬 속에 데뷔 EP 「Verve」와 앨범 「A Storm In Heaven」을 발표했지만 별 반응을 얻지 못했고, B-Side와 Outtake를 수록한 컴필레이션 「No Come Down」을 발표할 무렵엔 버브(Verve)라는 밴드명을 쓸 수 없게 되었다. 동명의 재즈레이블로부터 고소를 당할 위기에 처한 밴드는 결국 더 버브로 개명을 하게 됐다. (하지만 더 버브라 부르는 팬은 그리 많지 않다)

불운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개명 이후 밴드가 반복해서 겪은 일은 다름 아닌 ‘해체‘와 ’재결성‘이었다. 1995년에 발표한 앨범 「A Northern Soul」이 조금씩 대중의 관심을 받을 무렵, 밴드는 돌연 해체를 선언했다. 가장 큰 문제는 밴드와 기타리스트 닉 맥케이브(Nick McCabe)의 불화였고, 결국 닉을 방출하기 위한 방법으로 리처드 애쉬크로프트(Richard Ashcroft)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리처드는 이 격렬한 앨범을 만들면서 모두가 지쳤고, 이성을 잃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진정성 있는 앨범이었다. 당시 노엘 갤러거(Noel Gallagher)는 리처드에게 <Cast No Shadow>를 헌정했고, 오아시스(Oasis) 앨범 다음으로 뛰어나다는 특유의 건방진 찬사를 보냈다. 팬들은 세 번째 싱글 <History>를 들으며 뒤늦은 아쉬움을 토로했다.

밴드는 해체했지만 계속 음악을 하고 있었고, 버브가 다시 돌아오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새 멤버로 사이먼 통(Simon Tong)이 가세했고, 리처드는 결국 닉을 다시 밴드로 복귀시켰다. 1997년에 발표한 앨범 「Urban Hymns」의 사운드는 조금 더 대중적이었고,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영국 앨범차트 1위와 250만장의 판매고, 3개의 Top 10 싱글을 배출했고 1998년 브릿 어워드를 석권했다. (당시 국내에선 심의 문제로 앨범 대신 <Bitter Sweet Symphony〉싱글만 발매되는 해프닝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히트곡 <Bitter Sweet Symphony〉가 문제였다. 이 곡은 롤링 스톤즈(The Rolling Stones)의 <The Last Time> 오케스트라 연주 버전을 무단 도용한 혐의로 수익금 전액을 롤링 스톤즈에게 지불해야 하는 비극을 안겼다. 1998년 8월 29일 아일랜드 슬레인 캐슬 공연을 끝으로 휴식기에 들어간 밴드는 1999년 4월, 또다시 해체를 선언했다. 리처드와 닉은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였지만 관계는 회복되지 않았고, 밴드도 지속될 수 없었다. 이후 리처드는 본격적으로 솔로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그렇게 버브는 끝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2007년 6월, 밴드는 BBC 라디오를 통해 원년 멤버 재결성 소식을 알렸다. 11월부터 시작된 투어는 순식간에 매진됐다. 2008년엔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에 출연했고, 11년 만에 새 앨범 「Forth」를 발표했다. 앨범은 영국차트 1위를 기록했고, 싱글 <Love Is Noise>가 차트 4위에 오르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리처드는 닉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재결성한 것은 아니며, 솔로활동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2009년 8월, 밴드는 세 번째 해체소식을 알려왔다. 리처드가 닉의 알콜 문제를 지적했지만, 닉과 사이먼 존스(Simon Jones)는 버브의 재결성이 리처드의 또 다른 솔로 활동을 위한 것이었다고 반박했다.

이처럼 맺고 끊는 게 너무 확실했던 탓에 구설수도 많았지만, 음악만큼은 예외였다. 밴드의 불행과 불화는 계속됐지만, 그들의 음악은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했다. 지금도 버브가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는 리처드를 보니, 세 번째 재결성은 시간문제인 것 같다. 

재결성 이전 최고의 앨범


Urban Hymns (1997)
해체를 선언했다가 컴백했지만 「A Northern Soul」과 이 앨범 사이의 공백은 짧은 휴식기로 보는 게 더 적절하다. 한차례 진통을 겪은 뒤 밴드의 시선은 더 넓어졌고, 강렬하면서도 뭉클한 앨범을 완성시켰다. 한편의 영화 같은 <Bitter Sweet Symphony〉는 누구나 다 아는 곡이 됐고, 처음으로 영국차트 1위에 오른 <The Drugs Don't Work>는 버브식 러브송이다. <Sonnet>과 <Lucky Man>, <One Day>는 달라진 버브를 느낄 수 있는 곡. 특유의 사이키델릭 사운드를 선사하는 <The Rolling People>, <Catching The Butterfly>, <Come On>의 존재감도 만만치 않다. 쓰라린 진실을 노래한 ‘철저하게 이기적인’ 앨범.

재결성 이후 최고의 앨범

Forth (2008)
「Urban Hymns」 이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사이키델릭 앨범. 리처드의 솔로와 버브의 차이를 사운드로 확인시켜준다. 예전 곡들에 밀리지 않는 중독성을 지닌 <Love Is Noise>, 몽환적이고 뭉클한 <Rather Be>와 <Judas>로 건재를 알렸다. <Noise Epic> 같은 강렬한 곡도 있지만, 다소 늘어진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느린 곡이 많다. <Valium Skies>는 1990년대를, <Columbo>는 라디오헤드(Radiohead)를 연상시킨다. 오아시스보다 먼저 “우리가 세계 최고의 강력한 로큰롤 밴드”라고 외쳤던 리처드의 자신감이 허세가 아니었다. 팬들의 높은 기대치가 버겁기는 했지만, 버브의 존재감을 증명하기엔 충분했다. 

월간 핫트랙스 매거진 2012년 2월호 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