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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cert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My Bloody Valentine) 내한공연 후기



2013년 2월 3일(일) 오후 7시 유니클로 악스

패티 스미스(Patti Smith) 공연 다음 날, 같은 장소에서 슈게이징과 노이즈 팝을 대표하는 밴드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My Bloody Valentine)이 첫 내한공연을 펼쳤다. 라디오헤드(Radiohead), 스매싱 펌킨스(The Smashing Pumpkins) 등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거물급 밴드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은 다양한 음악 팬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도 충분했던 것일까, 궂은 날씨에도 공연장 주변에 모인 사람들과 현장에서 표를 구입하는 사람이 적잖이 보였다. 순간 공연 시간이 임박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공연장 안에는 최근 관람한 다른 내한공연보다 더 많은 관객들이 보였다.



예정된 시간보다 조금 늦게 시작된 공연의 사운드는 예상보다 훨씬 더 폭발적이었다. 케빈의 깐깐한 사운드 메이킹은 말할 것도 없고, 드럼은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현란했다. 팬들에게 매우 익숙한 <I Only Said> 리프로 고공비행할 때 관객들은 열렬히 환호했고, 원곡보다 훨씬 격렬하게 연주한 <When You Sleep>, <You Never Should>가 이어질 때의 호응도 좋았다. 하지만 밴드 사운드의 핵심인 케빈 쉴즈(Kevin Shields)의 몰입과 집착이 강해질수록 관객들의 호응은 조금씩 약해졌고, 큰 볼륨을 견디지 못해 공연에 앞서 나눠준 이어플러그를 착용하는 관객들이 조금씩 눈에 띄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모두 다함께 즐기는 공연이 아닌, 환상과 악몽이 혼재된 공간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밴드의 연주를 관람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깐깐한 지휘자 같았던 케빈은 거의 매번 기타를 바꿔가며 연주했고, <Only Shallow>의 사운드가 마음에 들지 않자 연주를 중단하고 다음곡인 <Thorn>을 먼저 연주한 다음 다시 <Only Shallow>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To Here Knows When>이 끝난 뒤에는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아예 통째로 곡을 다시 연주하기도 했다. 두 번이나 연주를 중단한 <Feed Me With Your Kiss>는 결국 세 번 만에 곡을 끝마쳤다. 완벽주의자 케빈이 무대 위에서 보여준 괴팍한 모습은 그 어떤 공연에서도 볼 수 없는 광경이었고, 공연이라기 보단 리허설을 관람하는 것 같았던 관객들은 조금 당황하거나 혹은 그 자체에 더 큰 의미를 두며 기뻐했다.






공연의 절정은 역시 마지막 곡 <You Made Me Realise>가 20분 가깝게 연주될 때였다. 골수팬들의 귀마저 벅차게 만든 이 곡은 그만큼 강하게 관객들을 압박했다. 그리고 결국엔 공연 내내 만지작거렸던 이어플러그의 포장을 뜯게 만들었다. 이건 마치 이날 내린 폭설에 세찬 바람까지 몰아치는 기분이었다. 굉장한 경험을 한 것은 분명했지만, 공연을 즐겁게 관람한 친구들도 이구동성으로 “마지막 곡을 다시 연주했다면 정말 힘들었을 것”이라고 얘기했을 정도다.

밴드는 완벽함을 추구했지만, 관객 입장에선 혼란스럽기도 했던 공연이었다. 원곡보다 더 희미하게 들린 보컬을 비롯한 전반적인 사운드도 조금은 아쉬웠다. 마침 이날은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이 22년 만에 발표한 신작 「m b v」가 발매되어 더 의미가 깊었다. 밴드의 첫 내한공연은 22년 만의 컴백이 아닌, 신작을 완성하는데 22년이 걸린 이유를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Setlist
01. New You
02. I Only Said
03. When You Sleep
04. You Never Should
05. Honey Power
06. Cigarette In Your Bed
07. Come In Alone
08. Only Shallow (aborted)
09. Thorn
10. Only Shallow
11. Nothing Much To Lose
12. To Here Knows When
13. Slow
14. Soon
15. Feed Me With Your Kiss
16. You Made Me Realise

비굿(b.goode) 매거진 1호에 쓴 기사. 무가지로 발행되는 비굿 매거진에서는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의 인터뷰도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