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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cert

밥 딜런 (Bob Dylan) 내한공연 후기 (2010년 3월 31일)



거친 보이스에 담아낸 세월의 깊이, 그리고 음악

밥 딜런이 진짜 한국에 왔다. 제법 길었던 일본 투어를 마치고 우리나라를 몸소 찾은 것이다. 만약에 그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냐고 반문한다면, 동시대의 비틀즈가 존경했던 존재라는 답변을 우선적으로 건넬 수 있겠다.

사실 나는 그의 업적이나 심오한 메시지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다. 그것들을 이해하고 분석하고자 하는 노력조차 해본 적이 없다. 다만 10대 시절부터 그의 음악을 좋아했을 뿐이다. 그는 멜로디에 치중한 나의 음악 감상 방식에 경종을 울렸다. 사람들은 그를 Folk Rock의 대부라 칭했지만, 나에게 그는 American Rock의 대부와도 같은 존재였다.

1941년생인 그는 비슷한 연배의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나 믹 재거(Mick Jagger)보다도 나이가 많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펼친다. 신작들은 가볍게 차트 1위를 기록한다. 과거의 레퍼토리들로 무난히 공연하고 간간이 베스트 앨범을 공개하는 ‘추억의 팝스타’가 아니다. 사실 그는 팝스타라고 부르기에 민망할 정도로 히트곡이 적다. 심지어 차트 1위곡은 단 하나도 없을 정도다.



사진 - 이것이 벌써 반세기 전의 모습이 되었다.

나는 우연하게도 TV를 통해 ‘밥 딜런 내한공연’ 광고를 보게 되었다. 영상과 함께 이번 투어는 물론 한동안 연주하지 않던 ’Knockin' On Heaven's Door'와 ‘One More Cup Of Coffee'가 흐르고 있었다. 마치 추억의 팝스타가 펼치는 디너 쇼 광고를 보는 느낌이었다. 반가움보다는 우려가 앞섰다. 만약 차분하게 즐길 수 있는 공연을 기대하고 공연장을 찾았다면 매우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작은 우려는 현실이 되어 중반부부터 공연장을 빠져나가는 모습들이 적지 않게 목격되었다. 주로 과거를 회상하며 공연장을 찾았을 연배의 분들이었다. 세월의 깊은 흔적이 고스란히 반영된 그의 보이스는 거칠었고, 라이브로 편곡된 사운드는 과거보다도 훨씬 강렬했다. 무게중심은 당연하게도 음악이었고, 결코 무난하거나 간결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다소 밋밋했던 1980~90년대 라이브보다 훨씬 마음에 들었지만 말이다. 



낯선 곡들의 익숙함, 익숙한 곡들의 낯설음

내 개인적으로는 이번 공연의 세트 리스트가 너무도 만족스러웠다. 최근작을 비롯한 2000년대의 작품들에서 많은 곡이 선택되지 않았지만, 1960년대의 명곡들을 많이 연주했다. ‘Rainy Day Women # 12 & 35’로 시작된 오프닝도 의외였고 이어서 ‘Lay, Lady, Lay’의 도입부를 듣자마자 쾌재를 불렀다. 심한 목감기 여파로 매우 얌전히 공연을 관람했지만, 평소의 컨디션이었다면 시작부터 호들갑을 떨었을 것 같다.

뒤늦게 세트 리스트를 찾아보니 대부분 아는 곡들이었다. 그러나 정작 공연 때는 이것이 어떤 곡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낯선 곡들의 친근함과 익숙한 곡들의 낯설음이 미묘하게 얽혀있었다. 나는 왜 ‘I'll Be Your Baby Tonight’과 ‘Desolation Row’, ‘Shelter From The Storm’이 연주되던 순간, 그것들을 알아채지 못한 것일까? 참 미스터리하다.



연주를 하지 않을 것 같던 ‘Just Like A Woman’이 흐를 때는 너무나도 반가웠다. 굉장히 강렬하게 편곡된 ‘Highway 61 Revisited’이 흐를 때야 비로소 몇 곡이 연주되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대한민국 관객들의 본능(?)은 결국 첫 앵콜 곡인 ‘Like A Rolling Stone'이 흐르면서 폭발했다. 관객들은 우르르 펜스로 몰려들었고 따라 부르기조차 힘들게 편곡된 그 노래를 합창했다. 합창조차 어려웠던 관객들은 환호와 박수로 열기에 동참했다. 밥 딜런 공연장에서 쉽게 목격되는 광경은 아니었을 것이다. 


최근작 'Together Through Life'에서 유일하게 선택된 'Jolene'에 이어 ‘All Along The Watchtower’가 흐르는데 왜 울컥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극히 개인적인 감정이었을 것이다. 그냥 스스로에게 좋은 위로가 되었던 것 같다. 몸도 마음도 매우 지쳐있던 하루였기에. 

대한민국 관객들은 결국 밥 딜런과 밴드 멤버들을 다시 무대로 돌아오게 했다. 월드 투어에서 추가적으로 앵콜 곡을 연주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여기는 대한민국이다. 결국 ‘Blowin' In The Wind’까지 들을 수 있었다. 물론 오리지널과는 많이 다른 형식이다. 작년 Oasis 내한공연에서 노엘이 예상치도 못한 ‘Live Forever'를 들려줬던 것처럼 ’깜짝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Blowin' In The Wind’가 끝난 후 밥 딜런과 밴드 멤버들은 퇴장했지만, 한참동안 환호와 박수가 이어졌다. 아마도 그것은 감동과 사심이 섞인 소리들이었을 것이다.

내가 아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공연장을 찾았다. 그냥 밥 딜런 공연을 관람한다는 자체가 큰 의미여서 찾았다는 얘기들도 많다. 역사적인 순간에 동참하고 싶은 마음들이 통했는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니 나 역시도 그의 이름을 확인하고 주저 없이 예매부터 했다. 반드시 그의 공연을 봐야할 이유조차 찾을 필요가 없었다. 왜? 밥 딜런이니까. 그의 절대적 존재감은 여전히 유효했던 것이다.



사진 출처 - 밥 딜런 오피셜 홈페이지 (http://www.bobdylan.com)

Setlist
1 Rainy Day Women # 12 & 35 (Blonde On Blonde)

2 Lay, Lady, Lay (Nashville Skyline)
3 I'll Be Your Baby Tonight (John Wesley Harding)
4 Stuck Inside Of Mobile With The Memphis Blues Again (Blonde On Blonde)
5 The Levee's Gonna Break (Modern Times)
6 Just Like A Woman (Blonde On Blonde)
7 Honest With Me (Love And Theft)
8 Sugar Baby (Love And Theft)
9 High Water (for Charlie Patton) (Love And Theft)
10 Desolation Row (Highway 61 Revisited) 
11 Highway 61 Revisited (Highway 61 Revisited) 
12 Shelter From The Storm (Blood On The Tracks)
13 Thunder On The Mountain (Modern Times)
14 Ballad Of A Thin Man (Highway 61 Revisited)  

Encore

15 Like A Rolling Stone (Highway 61 Revisited)  
16 Jolene (Together Through Life)
17 All Along The Watchtower (John Wesley Harding)

Encore II

18 Blowin' In The Wind (The Freewheelin' Bob Dylan)


* 직접 찍은 사진들은 워낙 저질이라 올리지 않습니다. 멀티미디어 욕심은 조속히 버려야겠습니다. 
* 만약 밥 딜런의 라이브를 처음 듣는다면 '노래'가 거북하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이야기'를 듣는다고 생각하며 결국엔 극복했습니다. 지금은 심지어 편안하기까지 합니다.  
* 유명하지 않은 저를 알아봐주신 어느 분께 특별히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Written By 화이트퀸 (styx020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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