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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퀸의 음악여행

벡(Beck)이 회상하는 데이빗 보위. “그는 모든 고정관념에 맞선 상징적인 존재” 본문

음악/보위, 스웨이드

벡(Beck)이 회상하는 데이빗 보위. “그는 모든 고정관념에 맞선 상징적인 존재”

화이트퀸 2018.05.27 12:59

보위를 영웅으로 추앙했던 벡이 롤링 스톤 매거진 데이빗 보위 추모 특집호에서 이야기한 것들. 

 


https://www.rollingstone.com


1. 저는 보위 음악을 들으며 자랐어요. 정체되지 않고 늘 변화를 시도했던 그는 롤모델이 됐고, 진짜 아티스트가 무엇인지 일깨워줬죠. 보위는 고정 관념에 정면으로 맞섰어요. 제가 하고자 하는 것에 확신이 없을 때, 그의 음악은 저를 더 높은 곳으로 인도했어요. 


2. 처음 본 보위 공연은 1983년 ‘Let’s Dance’ 투어 때였어요. 캘리포니아 샌 버너디노에서 열린 페스티벌이었는데 10만 명 정도의 관객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당시 그는 30대 중반 정도로 이미 살아있는 록의 전설 같은 존재였죠. 당시 저는 어린아이였지만 그가 특별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눈앞에 프랭크 시내트라와 엘비스 프레슬리가 같이 있는 기분이랄까. 보위는 무대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과시했어요.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 보위에게 홀려버렸죠. 


3. 당시 많은 여학생이 보위 자료를 스크랩해서 가지고 있을 정도로 그는 유명한 스타였지만, 다른 팝스타들과 차별되는 특별함이 있었어요. 사람들은 그가 만들어낸 모든 것에 빠져들었죠. 그는 훌륭한 음악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지만, 그 틀에 자신을 가두지 않았어요. 여러 감정이 교차하는 ‘Changes’ 같은 발라드를 쓸 아티스트는 어디에도 없죠.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깊이가 느껴졌던 그의 음악은 최고급 칵테일 같았어요. 


4. 보위는 연극, 문학, 아방가르드, 팝아트까지 자신에게 영감을 준 세계를 완벽하게 이해했고, 그것들을 새롭게 해석해서 세상에 선보였어요. 비틀스(The Beatles)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처럼 말이죠. 음악 역사에 남을 곡을 계속 만들어내면서 비주얼도 강조했는데, 무대 세트와 뮤직비디오는 자부심이 대단했어요. 저는 그의 철저한 프로 의식에 감탄했죠. 한동안 그는 모두의 시선을 피해 약간 미친 과학자처럼 정신없이 실험에 몰두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저도 끝없이 영감이 떠올라서 몇 개월간 제대로 잠을 못 잔 엉망진창인 상태로 뭔가를 깨달은 경험이 있거든요. 


5. 제가 본격적으로 보위 음악에 빠져든 것은 12살 무렵이에요. 그런 계기를 마련해 준 앨범은 [Hunky Dory]죠. 저도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는 시기와 무관하게 모든 앨범이 다 좋아졌어요. 어느 것 하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죠. 개인적으로 소설이 연상되는 ‘Fashion’ 같은 곡을 좋아했어요. 물론 ‘Let’s Dance’도 좋아했죠. 50년대 같으면서 동시에 현대적이고 이국적인 그 곡에 당시 모두가 빠져 있었던 것 같아요. 보위가 한동안 ‘Let’s Dance’를 썩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는 게 조금 아쉬웠어요. 꽤 오랜 시간 동안 추상적인 음악을 추구해온 뮤지션이 만든 직선적인 팝송은 단순한 히트 싱글에 없는 매력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6. [Low] 앨범도 굉장히 좋아해요. 크라우트 록과 일렉트로닉을 가로지르는 새로운 음악이 탄생하는 과정을 그린 것 같잖아요. 후에 펑크로 이어질 무언가가 깃들어 있는 것 같기도 해요. 몇 년 전에 200명의 뮤지션과 함께 ‘Sound And Vision’을 커버했는데 그렇게 많은 뮤지션과 한 번에 작업한 것이 처음이라 힘들었지만, 좋은 경험이었어요. 보위가 그 작업을 어떻게 생각했을지 모르겠는데, 불쾌하진 않았기를 바랄 뿐이죠. 그를 만족시킬 수 기준은 굉장히 높기 때문에 대부분의 커버곡이 답답하게 들릴 것 같아요. 아주 훌륭한 몇 개를 제외하곤 전부 끔찍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죠.

 

7. 보위와 실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몇 번 있어요. 그때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네요. 위트가 넘쳤고, 모르는 게 없는 사람 같았어요. 음악과 예술은 물론 만화, 일본의 신사까지 정말 다양한 주제가 오갔죠. 저는 그의 곡을 리믹스한 적이 있는데 더 많은 작업을 하고 싶었고, 콜라보레이션까지 성사되길 원했어요. 실제로 우리는 이메일로 주고받았고, 시간만 허락한다면 무언가를 완성해낼 수 있을 거로 생각했어요. 하지만 아쉽게도 그 꿈은 평생 이룰 수 없게 되었죠. 제가 보위에게 없는 무언가를 가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롤모델 같은 존재와 함께 음악을 만드는 건 대다수 뮤지션의 꿈이잖아요.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큰 자극을 주었던 그는 창의력으로 똘똘 뭉친 존재였어요.


  


8. 보위와 작업한 사람을 꽤 많이 알고 있는데, 그가 스튜디오에서 즉흥적으로 떠올린 것을 그대로 녹음한 테이크가 굉장히 좋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어요. 18세기 문학 운동인 슈투름 운트 드랑(Sturm und Drang)처럼 관습을 버렸다고도 할 수 있죠. 보위처럼 위대한 예술가의 죽음은 전 세계 뮤지션들에게 마치 가족을 잃은 큰 상실감을 안긴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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