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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낯설지 않지만,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흥미로운 앨범. 블러(Blur)의 'The Magic Whip'

01 Lonesome Street
02 New World Towers
03 Go Out
04 Ice Cream Man
05 Thought I Was a Spaceman
06 I Broadcast
07 My Terracotta Heart
08 There Are Too Many of Us
09 Ghost Ship
10 Pyongyang
11 Ong Ong
12 Mirrorball

 

블러의 깜짝 선물은 ‘2015년 발매 앨범’ 기사에 그들을 쏙 빼놓은 나를 당황하게 했다. 바로 지난해에 데이먼 알반(Damon Albarn)이 「Everyday Robots」라는 멋진 솔로 앨범을 발표하면서 블러의 컴백이 더 희미해졌다고 예측한 것은 완전히 빗나가버렸다.

 

  엄청난 반가움에 물음표가 뒤따른다. 그레이엄 콕슨(Graham Coxon)까지 합류한 4인 체재로 16년 만에 발표한 새 앨범에 대한 궁금증이다. 무엇이 그들을 다시 움직이게 했을까? 가장 큰 사건은 올림픽 조직위원회가 2012년 런던 올림픽 폐막 공연을 제안한 것이다. 2009년 이후 다시 무대에 서는 것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멤버들은 일회성이 아닌, 2013년에도 공연을 이어갔다. 코첼라, 록 워히터 등 여러 페스티벌에서 블러를 만날 수 있었으며 ‘도쿄 록스 2013’도 예정된 공연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 페스티벌이 갑작스럽게 취소되면서 5일이라는 시간이 생겼다. 이때 멤버들은 각자 시간을 보낼 수도 있었지만, 데이먼은 홍콩의 작은 스튜디오에서 함께 놀아보자고 제안했다.

 

  무언가를 완성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없었던 멤버들은 좁은 스튜디오에서 자유롭게 소통하며 즐겁게 연주했다.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많았고, 느낌도 좋았다. 데이먼은 자신이 노래를 제대로 부르지 않았으나 전체적인 녹음은 상당히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5일간의 기록은 여러 스케줄에 밀려 1년 넘게 방치되었다. 그렇게 먼지가 수북이 쌓인 테이프를 다시 꺼낸 것은 그레이엄으로 누구보다 밴드를 잘 아는 프로듀서 스티븐 스트리트(Stephen Street)와 함께 곡을 다듬었다. 그레이엄과 스티븐의 손을 거친 결과물을 들은 데이먼은 무척 좋아하며 더는 작업을 지체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연말에 다시 홍콩을 방문하여 자신의 다양한 경험을 녹여낸 노랫말을 완성한 데이먼은 보컬 및 다른 파트를 보완하는 것으로 녹음을 마무리했다.

 

 

 

  블러의 컴백을 알리기에 충분한 <Lonesome Street>는 1990년대가 떠오르는 흥겨운 리프와 리듬, 나른한 보컬과 코러스가 어우러진 톱 트랙으로 특유의 ‘불안정한 매력’을 드러낸다. 「Modern Life Is Rubbish」에서 「Parklife」로 향하는 과정에 있다고 봐도 무방할 이 곡은 오랜 앙숙인 리엄 갤러거(Liam Gallagher)가 트위터를 통해 ‘올해의 노래’라고 칭찬하여 더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리엄이 100% 진심으로 한 말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트위터 계정이 해킹을 당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가장 먼저 공개했던 <Go Out> 역시 1990년대 앨범에 수록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곡으로 그레이엄의 존재감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Girls And Boys>, <Entertain Me> 등이 떠오르는 댄서블한 리듬과 기타 노이즈, 웅얼거리는 보컬은 적당한 긴장감을 형성한다. 전형적인 블러식 팝송이라 할 수 있는 <Ong Ong>은 함께 부르기 좋은 여름 노래로 친근한 멜로디를 자랑하는 <Daisy Bell>, <Let’s All Go Down The Strand> 같은 초기 비사이드 트랙과 닮았다. 레게를 시도한 <Ghost Ship>은 한낮의 여유를 책임질 BGM으로 손색없는 행복한 곡이다. 블러와 색깔이 다른 프로젝트를 통해 다양한 경험을 쌓은 데이먼의 역량은 이런 곡에서 더 빛을 발한다.


  짧고 역동적인 <I Broadcast>는 신서사이저 활용이 돋보인다. 블러가 아닌 다른 밴드가 2000년대에 <Song 2>와 유사한 것을 시도했다면 나올법한 곡으로 앨범의 재미를 더해준다. 데이먼이 큰 만족감을 표한 <New World Towers>는 동양적인 선율과 미니멀한 구성을 자랑한다. 블러와 고릴라즈(Gorillaz)가 만난 애시드 포크 <Ice Cream Man>, 데몬 스트링즈(Demon Strings)가 참여한 행진곡풍의 <There Are Too Many Of Us>, 평양을 방문했던 데이먼이 느낀 외로움과 공허함, 아름다움을 담아낸 미드 템포 발라드 <Pyongyang>은 묘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The Magic Whip」은 데이먼과 그레이엄이 우정을 회복하는 과정에 있는 앨범이기도 하다. 그레이엄과의 관계에 대해 노래한 <My Terracotta Heart>는 오랜 우정과 갈등을 슬픈 멜로디에 담아냈는데, 둘은 이번 앨범을 통해 친구이자 협력자로 서로를 더 존중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우아한 진화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Thought I Was A Spaceman>은 해맑은 실로폰과 웅장한 키보드, 드럼머신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대곡이다. 이방인의 고독함이 배어있는 <Mirrorball>은 낯선 풍경 속에서 교감하는 사이키델릭 블루스다.


  서로 다른 언어, 문화, 삶 속에서 다양한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The Magic Whip」은 낯설지 않지만,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흥미로운 앨범이다. 우연한 기회로 만든 놀라운 마법이다.

 

월간 비굿 매거진 14호에 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