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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반가운 새해 선물 같은 앨범, 벨 앤 세바스찬의 'Girls In Peacetime Want To Dance'

01 Nobody's Empire
02 Allie
03 The Party Line
04 The Power of Three
05 The Cat with the Cream
06 Enter Sylvia Plath
07 The Everlasting Muse
08 Perfect Couples
09 Ever Had a Little Faith?
10 Play for Today (featuring Dee Dee Penny)
11 The Book of You
12 Today (This Army's for Peace)

 
개인의 경험담일 수도 있지만, 10평 남짓한 공간에서 벨 앤 세바스찬(Belle And Sebastian) 특유의 우아한 멜로디를 만끽하는 것은 꽤 낭만적인 일이다. 노라 존스(Norah Jones), 캐리 멀리건(Carey Mulligan)이 게스트로 참여한 「Write About Love」(2010)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앨범 이후 한동안 잠잠했던 밴드는 어느새 결성 20주년을 바라보며 아홉 번째 정규 앨범 「Girls In Peacetime Want To Dance」를 내놓았다. 멤버들이 스코틀랜드 독립 찬반투표 기사가 실린 신문을 보고 있는 사진과 <Nobody's Empire>, <The Party Line>의 뮤직비디오는 변화를 암시하는 훌륭한 예고편이 되었다. 집스터 시절을 더욱 선명하게 기억하는 팬이라면 조금 당황했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앞서 언급한 ‘집스터 시절’은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스튜어트 머독(Stuart Murdoch)이 학교 졸업 과제로 친구들과 함께 뚝딱 만들어낸 데뷔 앨범 「Tigermilk」의 성공은 기적에 가까웠다. 글래스고의 무명 밴드 음악을 접한 소수 팬의 예찬은 끊이질 않았고, 1천 장 한정으로 찍었던 LP는 CD로 재발매하기 전까지 ‘없어서 못사는 앨범’이 되었다. 같은 해에 발표한 「If You're Feeling Sinister」는 ‘취미로 하는 밴드’라는 그들의 발언을 자조 섞인 농담으로 해석하게 하였다. 밴드는 열혈 팬을 자처하는 사람들의 굳건한 지지 속에 평단의 호응까지 이끌어냈다. 1999년 브릿 어워드 신인상 수상은 작은 밴드의 성공을 그려낸 드라마틱한 장면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밴드의 행보가 계속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완전하게 정비되지 않은 상태로 계속 전진했던 후유증은 생각보다 컸다. 밴드는 집스터에서 5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하며 겪은 어려움이 극에 달했을 때 변화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다. 다행히도 2003년 러프 트레이드로 레이블을 옮기고 시도한 음악적 변화는 성공적이었고, 안정을 찾은 밴드는 계속해서 명성에 부합하는 멋진 앨범들을 완성해냈다.


“우리는 언제나 변함없이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한다.” - 스튜어트 머독 (2014)

 

  밴드는 이번 앨범을 준비하면서 눈에 띄는 변화를 시도했다. 새로운 프로듀서 벤 알렌(Ben H. Allen)은 날스 바클리(Gnarls Barkley), 애니멀 콜렉티브(Animal Collective)와 작업했던 인물로 멤버들이 원했던 것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작업하고자 했다. 그는 완벽한 사전 준비 없이 더 즉흥적이면서 여유 있게 작업하길 원했고, 그 요구에 응한 밴드는 유례없이 개방적이며 다양한 팝 앨범을 완성했다. 레코딩은 애틀랜타에서, 마스터링은 런던의 애비로드 스튜디오에서 진행했다. 


  사운드의 변화를 가장 쉽게 풀어서 설명하는 곡은 먼저 공개한 첫 싱글 <The Party Line>이다. 디스코풍의 역동적이고 세련된 이 곡은 타악기와 신서사이저가 돋보이며, 공연장에서 아주 뜨거운 반응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스튜어트 머독 특유의 섬세한 목소리와 아름다운 멜로디는 변함없이 매력적이다. 기존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드는 톱 트랙 <Nobody's Empire>는 오랜 기간 만성 피로 증후군에 시달렸던 스튜어트 머독의 투쟁기를 그려낸 개인적인 곡이다. 피아노와 신서사이저, 은은한 코러스를 바탕으로 매끄럽게 전개되는 이 곡을 들으며 과거를 회상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무거운 주제를 아름답게 풀어내는 솜씨도 여전하다.

 

http://store.matadorrecords.com


  벨 앤 세바스찬의 ‘유로팝 트랙’들은 앨범을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시계를 1980년대로 되돌린 <Enter Sylvia Plath>는 아바(ABBA)가 떠오르며, 7분을 훌쩍 넘기는 <Play For Today>는 덤덤 걸스(Dum Dum Girls)의 디 디 페니(Dee Dee Penny)와 멋진 듀엣을 이뤘다. 흥을 돋우는 달콤한 팝송 <The Book Of You>는 사라 마틴(Sarah Martin)이 리드 보컬을 맡았다.


  많은 사람들이 반기고 익숙해할 곡은 스튜어트 머독이 20여 년 전에 만들었던 <Ever Had A Little Faith?>가 아닐까 싶다. 벨벳 언더그라운드(The Velvet Underground)의 데뷔 앨범에 실린 <I’ll Be Your Mirror>의 섬세함과 소박함을 닮은 이 곡은 더 가슴 깊이 다가올 수밖에 없다. 2013년 루 리드(Lou Reed)의 갑작스러운 부고를 접한 멤버들이 마음을 모아 완성한 곡이기 때문이다. 내 사랑을 쟁취하려면 팝을 연주하고 유명해져 보라는 노랫말을 통해 팝의 힘과 매력을 표현한 <The Everlasting Muse>, 토속적인 느낌을 주는 노던 소울 트랙으로 스티비 잭슨(Stevie Jackson)이 리드 보컬을 맡은 <Perfect Couples>, 꿈결 같은 발라드 <The Cat With The Cream>은 앨범의 다양성을 재차 확인시켜준다. 몽환적이고 아름다운 <Today (This Army's For Peace)>를 클로징 트랙으로 배치한 것도 아주 좋은 선택이다.


  자연스러운 변화를 통해 새로운 시작을 알린 벨 앤 세바스찬의 미래는 매우 낙관적이다. 반가운 새해 선물 같은 앨범 「Girls In Peacetime Want To Dance」에 이어 2월 12일에 열리는 첫 단독 내한공연, 그리고 같은 날 개봉하는 스튜어트 머독이 감독을 맡은 뮤지컬 영화 ‘갓 헬프 더 걸(God Help The Girl)’까지, 이제 그들의 매력을 만끽할 일만 남았다. 
 

월간 비굿 매거진 13호에 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