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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풍부한 상상력과 섬세함을 지닌 숭고한 작품, 시규어 로스(Sigur Ros)의 'Kveikur'

01. "Brennisteinn"
02. "Hrafntinna" 
03. "Ísjaki"  
04. "Yfirborð"
05. "Stormur" 
06. "Kveikur" 
07. "Rafstraumur"
08. "Bláþráður"
09. "Var"

 

유일무이한 존재로 사랑받은 밴드 시규어 로스의 2막 1장 

광대한 자연과 독특한 풍경을 간직한 대서양 북부의 작은 섬나라 아이슬란드를 얘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시규어 로스(Sigur Ros)는 이제 세계적인 밴드로 자국의 신비한 소리를 전파하고 있다. 비록 아이슬란드어와 호프랜드의 언어로 불리는 조어가 쓰인 노랫말을 완벽히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만, 그리 큰 문제가 되진 않는다. 


  “우리는 보통 노랫말을 제일 마지막에 씁니다. 음악을 들으면서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을 노랫말로 옮기곤 하죠. 노랫말을 모르고 음악을 듣는 사람이 무언가를 떠올리는 것은 재미있는 일입니다. 우리가 노랫말을 쓰는 시점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 욘시(Jonsi)

 

  1997년 발표한 데뷔작 「Von」을 시작으로 지난 16년간 여섯 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한 시규어 로스는 일곱 번째 앨범 「Kveikur」 발매를 앞두고 제법 큰 변화를 예고했다. 외부적인 변화는 레이블을 EMI 산하의 팔로폰에서 XL로 옮긴 것이다. XL은 아델(Adele), 벡(Beck), 잭 화이트(Jack White), 라디오헤드(Radiohead) 등 굵직하고 색깔 있는 아티스트들이 대거 소속된 인디 레이블로 밴드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내부적인 변화는 키보디스트 캬르탄 스베인손(Kjartan Sveinsson)이 다른 일에 시간을 투자하고 싶다는 이유로 밴드를 떠난 것이다. 이로써 시규어 로스는 데뷔 때처럼 다시 트리오가 되었다.  

 

Sigur Ros ⓒKang & Music

 

  그간 평균 3년 주기로 앨범을 발표한 것과 달리 1년 만에 공개한 신작 「Kveikur」의 작업은 사실 꽤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하지만 작업은 도중에 중단되고 밴드는 「Valtari」를 먼저 완성시켰다. 이후 작업을 재개한 「Kveikur」는 11개월 만에 완성된 앨범으로 소개되었지만, 실제로는 그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밴드는 베이스와 드럼으로 기본적인 틀을 만들고 계속 여러 소리들을 쌓아가며 곡을 변화시켰다. 도화선을 의미하는 신작 타이틀은 새로운 시작을 내포하고 싶던 밴드의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한때 두 작품을 병행한 멤버들은 이 앨범을 다시 작업하기로 결정했을 때 기존의 틀과 자신의 영역에서 벗어난 무언가를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것은 큰 변화로 이어졌다.


  “다른 작업을 해볼 생각은 늘 가지고 있었어요. 물론 그 생각만 했던 것은 아니죠. 다만 매번 같은 것을 만드는 게 조금 시시해져서, 흥미로운 것을 하고 싶었어요.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Kveikur」가 우리 셋의 힘으로 프로듀싱까지 해낸 첫 앨범이라는 거죠.” - 욘시

 

  기묘한 앨범 커버는 브라질 출신의 화가이자 행위예술가인 리지아 클라크(Lygia Clark)의  1967년 작품 ‘Mascaras Sensorias’의 일부를 가져온 것이다. 데뷔작 「Von」의 커버와도 약간 유사한 신작은 제법 거칠고 공격적인 사운드까지 담고 있어 여러모로 초기 시규어 로스가 연상된다. 디지털과 미국 투어 EP로 3월 25일에 공개한 <Brennisteinn>은 내한공연에서도 연주한 곡으로 시규어 로스식 둠 메탈을 선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노이즈와 육중한 사운드를 앞세워 드라마틱하게 전개되는 이 곡은 어두우면서도 아름답다. 외형은 조금 다르지만 순식간에 시규어 로스 세계로 끌어들이는 마법 같은 힘이 여전하다. 참고로 투어 EP에 함께 실린 아방가르드한 연주곡 <Hryggjarsula>, <Ofbirta>는 「Kveikur」의 일본반 보너스 트랙으로도 수록되었다.  

 


  <Hrafntinna>는 톱 트랙 <Brennisteinn>만큼 강렬하진 않지만 짙은 어둠속에서 장엄한 분위기를 풍기는 욘시의 보컬과 찰랑이는 심벌, 그리고 불길한 스트링과 브라스 섹션으로 몰입도를 높인다. 4월말에 디지털로 공개한 <Isjaki>는 생동감 있는 리듬과 눈부신 후렴구로 색다른 황홀감을 선사한다. 앞선 두 곡의 어두운 분위기와 달리 제법 희망적인 이 곡은 시규어 로스식 뮤지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리듬감을 앞세운 <Yfirbord>는 욘시의 뒤틀린 보컬이 등장하는 절제된 곡이며, <Stormur>는 스트링과 피아노가 아름답게 어우러진 곡으로 아늑함이 느껴진다. 


  타이틀 트랙 <Kveikur>에는 신작을 준비하면서 느낀 흥분감과 여러 생각들이 응축되어 있다. <Brennisteinn>처럼 노이즈 섞인 거센 도입부와 웅장한 드럼, 그리고 욘시의 날카로운 보컬이 점화된 이 곡은 지금 들으면 조금 낯설 수 있는 데뷔작 「Von」에서 크게 진일보한 느낌이다. 참고로 공연장에서 더 아름답게 들리는 곡이기도 하다. 욘시가 솔로 앨범에서 시도한 일렉트로닉 팝 성향이 반영된 <Rafstraumur>의 우아한 폭발, 전작 「Valtari」의 앰비언트 사운드를 부분적으로 계승한 <Blapradur>를 지나면 피아노를 부각시킨 클로징 트랙이자 연주곡인 <Var>가 깊어진 새벽처럼 고요하게 흐른다. 

 

  벅찬 열정과 아이디어가 빛나는 「Kveikur」는 온화하고 아름다운 사운드스케이프가 인상적인 전작 「Valtari」와 달리 매우 강렬하다. 하지만 이처럼 의식적으로 기존과 다른 방식을 추구하면서 실험과 도전을 이어가도, 시우로 로스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아울러 밴드 특유의 풍부한 상상력과 섬세한 표현력이 녹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숭고한 작품이다.

 

 

+시규어 로스, 심슨네 가족들(The Simpsons)에 출연하다!  
시규어 로스가 5월 19일에 방송된 심슨네 가족들 529번째 에피소드 ‘The Saga Of Carl Carlson'에 출연했다. 밴드가 오프닝 테마를 커버해 많은 화제를 모은 529편은 주인공 호머 심슨의 친구 칼이 복권 당첨금과 함께 아이슬란드로 도망친다는 줄거리를 담고 있다. 

 

Kveikur 일본반 개봉샷

 

"Hryggjarsúla", "Ofbirta"가 일본반 보너스 트랙으로 수록됨 

 

 

월간 비굿 매거진에 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