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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데뷔 10년 만에 차트를 정복한 로빈 시크(Robin Thicke)의 'Blurred Lines'

01 Blurred Lines (featuring T.I. and Pharrell)
02 Take It Easy on Me  
03 Ooo La La  
04 Ain't No Hat 4 That
05 Get in My Way
06 Give It 2 U (featuring Kendrick Lamar)
07 Feel Good
08 Go Stupid 4 U
09 4 the Rest of My Life
10 Top of the World
11 The Good Life  
12 Pressure
13 Put Your Lovin on Me
14 Give It 2 U (Remix) (featuring Kendrick Lamar and 2 Chainz)

 

2002년 데뷔 이래 긴 공백 없이 꾸준한 활동을 이어온 R&B 싱어 로빈 시크가 대형 사고를 쳤다. 오랜 동반자인 퍼렐 윌리엄스(Pharrell Williams)와 함께 만든 <Blurred Lines>는 2013년 최장인 빌보드 싱글 차트 12주 연속 1위를 기록했으며 영국, 프랑스, 독일 등 14개국 차트 1위, 그리고 64개국 아이튠즈 차트 1위를 석권했다. 이에 2013년 가장 뜨거운 싱글 중 하나인 다프트 펑크(Daft Punk)의 <Get Lucky>는 <Blurred Lines>에 밀려 빌보드 싱글 차트 2위에 계속 머물러 있어야 했다. 로빈은 2007년 발표한 <Lost Without U>가 미국에서 14위까지 올랐을 뿐 대형 히트곡은 전무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런 폭발적인 반응은 더 흥미롭게 다가온다. 


  1970년대 뉴 소울과 디스코를 지향하는 <Blurred Lines>는 로빈이 퍼렐에게 마빈 게이(Marvin Gaye)의 <Got To Give It Up> 같은 그루브를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면서 시작됐다. 그 이야기를 들은 퍼렐은 무언가를 연주하기 시작했고, 스튜디오에 있던 로빈과 함께 30분 만에 곡을 만들었다. 


  “<Blurred Lines>는 거대한 크로스오버 싱글입니다. 저는 이 곡을 사랑해요. 하지만 이런 큰 반응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퍼렐의 공이 크죠. 그는 언제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창조할 수 있는 천재적인 인물 같아요. 그와 계속 작업할 수 있는 것은 대단히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 로빈 시크

 

 

  곡에 대한 평단의 반응도 호의적이다. 어바웃닷컴은 “로빈의 보컬은 진심으로 섹시하다”라고 평가했으며 빌보드는 “쾌활한 디스코 셔플링 R&B”로, 미시건 데일리는 “지난 몇 년간 퍼렐이 만든 비트 중 최고”라고 극찬했다. 의견은 분분했지만 두 가지 버전의 뮤직비디오도 인기에 크게 한몫했다. 피처링을 맡은 퍼렐 윌리엄스와 티 아이(T.I.)가 직접 출연하고 여성 모델들이 등장한 독특한 뮤직비디오는 유튜브에서 일억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성인 인증이 필요한 수위 높은 언레이티드 버전도 큰 화제를 모았다. 파격적인 노출로 유튜브 메인에서 1주일 만에 내려간 뮤직비디오는 베보(Vevo) 유튜브에서 하루 만에 조회수 백만을 넘겼다. 이런 폭발적인 스트리밍 덕을 본 싱글은 미국에서 트리플 플래티넘을 기록했다. 또한, 2013년 최고 히트곡이 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로빈은 성공의 기쁨을 만끽했다. 야심차게 만든 데뷔작의 실패 이후 생긴 두려움과 불안감도 모두 떨쳐냈다. 데뷔작 「A Beautiful World」의 발매연도가 2003년이니 10년 만에 제대로 빛을 본 셈이다. 여기에 작곡가 겸 프로듀서로 활동한 시간을 더하면 그의 음악 경력은 20년에 가깝다.

 

  2012년 5월 로빈은 ABC 채널에서 신설한 오디션 프로그램 ‘듀엣(Duets)’의 멘토로 참여했다. 이 프로그램은 톱스타와 실제 듀엣곡을 녹음할 신인 가수를 선발하는 형식으로 약 2개월간 방영되었다. 프로그램을 끝마친 로빈은 그해 7월 짐보 리(Jimbo Lee) 감독의 장편영화 ‘애비 인 더 썸머(Abby In The Summer)’에서 비중 있는 역을 맡았다. 이후 로빈은 지난 앨범과는 다른 방식으로 작업을 시작했고, 그렇게 「Blurred Lines」가 완성되었다. 

 

  신작 출시에 앞서 로빈은 인터뷰를 통해 “음악에 맞춰 아내와 춤출 수 있는 재미있는 앨범을 만들길 원했다”고 밝혔다. 퍼렐 없이 완성한 두 장의 앨범 「Sex Therapy」, 「Love After War」와 노선을 달리하겠다는 속내도 내비쳤다. 6집 「Blurred Lines」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최고의 파트너인 퍼렐의 컴백이다. 아울러 더 큰 변화를 위해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y Spears), 케이티 페리(Katy Perry) 등과 작업한 닥터 루크(Dr. Luke)를 영입한 것은 또 다른 승부수다. 지금까지 선보인 음악들은 R&B 영역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디스코와 팝, 세련된 발라드가 융합된 결과물은 더 놀랍게 다가온다. 


  유쾌한 보컬과 매력적인 후크, 흥겨운 퍼커션으로 파티의 시작을 알리는 <Blurred Lines>는 새로운 음악 세계를 구축한 기념비적인 싱글이다. 프린스(Prince)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6개월간 그의 음악만을 들은 경험이 있는 로빈은 이처럼 양지에서 프린스를 대면하는 그림을 완성해냈다. 팀발랜드(Timbaland)가 프로듀싱한 <Take It Easy On Me>는 풍부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세련된 팝이다. 도입부부터 다프트 펑크의 <Get Lucky>가 떠오르는 상쾌한 디스코 넘버 <Ooo La La>, 파티 음악으로도 손색없는 즉흥적인 디스코 펑크 넘버 <Get In My Way>는 시계를 1970년대 후반으로 되돌린다. 디스코와 소울을 적절히 섞은 <Ain't No Hat 4 That>은 부드러운 창법이 돋보이는 곡으로 저스틴 팀버레이크(Justin Timberlake)가 연상된다. 최근 급상승한 인기로 여러 매체에서 저스틴과 좋은 비교대상으로 떠오른 로빈은 둘의 유사성을 묻는 질문에 “우리는 여배우와 결혼했으며, 흑인 음악을 만드는 백인 남성이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재치 있게 응수했다.

 

 
  윌 아이 엠(will.i.am)이 작곡에 참여하고 닥터 루크가 프로듀싱한 두 번째 싱글 <Give It 2 U>는 감각적인 일렉트로닉 댄스 넘버로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가 피처링을 했다. 윌 아이 엠이 프로듀싱한 <Feel Good>은 오토튠이 가미된 흥겹고 세련된 곡이다. 이 두 곡은 평단과 기존 팬들에게서 상반된 반응을 얻고 있는 문제작이기도 하다. <4 The Rest Of My Life>는 가장 익숙하게 다가올 무난한 소울 발라드로 매력적인 팔세토 창법을 선보인다. 능숙하게 소울과 힙합을 넘나드는 <Top Of The World>는 매끄러운 흐름을 유지하는 세련된 곡이다. 모타운 사운드를 재현한 <The Good Life>는 밝은 분위기를 자랑하는 앨범에 걸맞은 화사한 엔딩 트랙이다.

 

  최근에 로빈은 켄드릭 라마, 프랭크 오션(Frank Ocean), 뱀파이어 위켄드(Vampire Weekend)의 앨범을 즐겨들었다. 그들 특유의 ‘창조적이고 흥미로운 음악’은 데뷔 10년을 넘긴 로빈에게도 좋은 자극이 되었을 것이다. 「Blurred Lines」는 “완벽에 가까운 여름 레코드”라는 롤링 스톤의 평을 되새기게 하는 대중적이고 세련된 앨범이다. 자신감을 회복한 로빈은 이 앨범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영국 차트 진입에 실패한 지난 앨범들의 부진을 씻고 1위에 오른 것도 대단한 기록이다. 미국에서는 또 어떤 새로운 기록을 만들어낼지 궁금하다.

 

월간 비굿 매거진 5호에 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