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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Reunion 5 - 해체는 하나의 과정일 뿐, 킹 크림슨(King Crimson)

1969년 영국 런던에서 결성된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킹 크림슨(King Crimson)의 여정은 험난했다. 단적인 예로 리더 로버트 프립(Robert Fripp)을 제외한 멤버교체만 20명이 넘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극단적 진보성향을 가진 밴드의 기상천외한 시도들은 마니아를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밴드는 모래성처럼 불안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로버트와 다른 멤버들이 대립하듯 추구한 불협화음은 인간적 관계에도 적용된 것 같았다.

데뷔작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의 성공으로 미국 투어가 한창일 무렵, 그렉 레이크(Greg Lake)는 새로운 밴드 결성을 결심하고 있었다. 음악적 견해 차이로 이언 맥도널드(Ian McDonald)가 먼저 탈퇴했고, 2집 「In The Wake Of Poseidon」에 참여한 그렉 레이크와 마이크 자일스(Mike Giles)도 밴드를 떠난 세션 상태였다.

멤버 탈퇴는 3집 「Lizard」와 4집 「Islands」 때도 반복됐다. (베이스는 앨범마다 교체됐다) 가사와 무대 조명을 맡은 피터 신필드(Peter Sinfield)마저 「Islands」를 끝으로 밴드를 떠났다. 이처럼 숱한 멤버 교체가 있었지만, 급진적 변화를 추구한 로버트는 흔들리지 않았다. 곧이어 존 웨튼(John Wetton), 빌 브루포드(Bill Bruford), 데이빗 크로스(David Cross)라는 실력파들을 영입, 염세와 환상이 조합된 기존 성향을 버리고 대신 더 복잡하며 즉흥적인 음악들을 선보였다. 새 라인업으로 발표한 앨범은 모두 호평을 받았고, 그렇게 안정권에 접어드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7집 「Red」 발표를 2개월 앞두고 로버트는 밴드 해체를 선언했다. 그의 독단이 극에 달했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음악 비즈니스에 환멸을 느낀 이유가 더 컸다. 완벽을 추구한 밴드가 5년간 350회 넘는 공연을 소화한 건 놀라운 기록이며, 킹 크림슨 활동은 ‘지칠 때까지 음악을 탐구하는 일’이라는 추측도 하게 만든다.


이후 로버트는 브라이언 이노(Brian Eno), 데이빗 보위(David Bowie)와 작업하며 시대 변화에 적응했고, 1979년부터 본격적인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1981년엔 빌 브루포드, 에이드리언 블루(Adrian Belew), 토니 레빈(Tony Levin)과 프로젝트 밴드 디서플린(Discipline)을 결성한다. 하지만 결국 킹 크림슨이란 이름을 다시 쓰게 됐고, 「Discipline」이란 재결성 앨범을 발표했다. 곡은 짧아졌고, 1970년대 음악들보다는 편해졌다. 시대를 의식했지만, 날카로운 실험을 멈추지 않았다. 이후 2장의 앨범을 더 발표한 밴드는 또다시 해체됐다.

이후 솔로와 프로젝트 활동에 전념한 로버트는 1991년, 킹 크림슨의 재결성을 언급했다. 그리고 1994년, 1980년대 멤버들과 팻 매스텔로토(Pat Mastelotto), 트레이 건(Trey Gunn)이 가세해 EP 앨범 「Vrooom」을 발표했다. 이듬해에는 새 앨범 「Thrak」을 발표하며 완벽한 부활을 알렸다. 특유의 치밀한 구성과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모두 보여줬다. 돌이켜 보면 해체는 미래를 위한 하나의 과정일 뿐이었다. 이후 오피셜 부틀렉 중심으로 수없이 많은 라이브 앨범이 공개됐고, 2000년대에 들어 2장의 앨범을 더 발표했다. 해체를 겪지 않고 5년 이상 밴드가 유지된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가장 최근작은 2003년 발표한 「The Power To Believe」다. 2009년부터는 40주년 기념 재발매가 시작됐고, 로버트는 2011년 야코 약식(Jakko Jakszyk), 멜 콜린스(Mel Collins)와 함께 「A Scarcity Of Miracles」를 발표했다. 이 앨범엔 마지막까지 남은 밴드 멤버들도 참여, 새로운 킹 크림슨 라인업으로 추측되고 있다. 늘 새 시대와 마주한 밴드가 2010년대를 그냥 지나칠 리 없다.

재결성 이전 최고의 앨범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 (1969)
개인적으로 애청하는 「Islands」와 「Red」 그리고 이 앨범을 두고 고민하다 결국엔 ‘모범답안’을 선택했다. 4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파격적이고, 압도적인 앨범이다. 불협화음이 아름답다는 얘기를 절로 꺼내게 만든다. 라이브에서 빠지지 않고 연주되는 <21st Century Schizoid Man>이 대표적이다. 영롱한 키보드와 플롯이 돋보이는 몽환적인 <I Talk To The Wind>, 심장 터질 것 같은 감동을 안기는 대곡 <Epitaph>, 정적의 세계로 인도하는 <Moonchild>, 웅장함으로 묵직한 여운을 남기는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까지 가볍게 지나칠 수 있는 곡이 없다. 시대를 빛낸, 시대를 앞선 마스터피스.

재결성 이후 최고의 앨범
 
Thrak (1995)

아주 인상적인 컴백 앨범이다. 1970년대 중반과 1980년대 사운드가 조합된 느낌이지만, 실험과 탐구를 멈추지 않는다. 여전히 고집스럽고, 신경질적이다. 강렬한 리프와 치밀한 구성으로 팬들을 감동시키는 <Vrooom>과 <Coda: Marine 475>, 타이틀곡 <Thrak>이 대표적이다. 원시적인 리듬 트랙 <B'Boom>,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의 곡을 격렬하게 편곡한 것 같은 <Sex Sleep Eat Drink Dream>도 흥미롭다. <Walking On Air>는 생각지 못한 감동을 안기는 발라드다. 비슷한 시기에 컴백한 예스(Yes),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도 신작을 발표했지만, 이만큼 도전적이고 파격적이진 않았다. 

월간 핫트랙스 매거진 2012년 3월호에 쓴 글


  • Favicon of http://tlduddlsp.tistory.com BlogIcon tlduddlsp 2013.11.15 20:08 신고

    한계를 뛰어넘어 봅시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나쁜 이는 없죠.
    하지만 고리타분한 추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진정한 골든 이어링이라 할 수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