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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cert

우리를 깜짝 놀라게 만든 팝스타의 내한공연

음반으로 듣던 아티스트의 공연을 보는 시대는 지났다. 공연을 통해 잘 몰랐던 아티스트를 발견하는 시대다. 음반이나 음원도 단순한 감상 용도만이 아닌 공연을 즐기기 위한 수단도 됐다. 팝스타 마돈나(Madonna)는 공연 중심의 활동을 선언하며 공연기획사 라이브 네이션(Live Nation)과 1억 2천만달러의 계약을 맺었다. 그녀는 유투(U2),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s)에 이어 2000년대 공연 수익 3위를 기록한 아티스트다. 그리고 이건 대세가 공연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사례다. 또한 세계적인 팝스타가 한국을 찾는 것도 예전처럼 놀랍지는 않다. 심지어 소수의 열성 팬을 거느린 인디 밴드 내한공연도 연이어 성사되는 시대다. 개인적으로 얼마나 많은 공연이 있었는지 궁금해 2012년 1월부터 4월까지의 일정을 뒤져봤는데, 놀랍게도 30회가 넘는 내한공연이 열렸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상반기에 잡힌 나머지 공연들도 매우 화려하고 다양하다.

팝스타의 공연은 사회적, 종교적 이슈가 되기도 한다. 노엘 갤러거(Noel Gallagher) 내한공연은 5분만에 티켓이 매진됐고, 바로 암표상들이 활개를 쳤다. 티켓 가격은 50%나 상승했고, 열성 팬들을 노린 사기 사건도 있었다. 결국엔 예정에 없던 공연이 하루 추가되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마침 추가된 날이 노엘 갤러거의 생일이라 팬들의 기쁨은 남달랐다. 그러나 암표상들의 활동은 갈수록 조직화되고 있어 제재가 필요하다. 한편 레이디 가가(Lady Gaga) 4월 내한공연은 갑자기 청소년 유해 공연으로 분류되어 만 18세 미만 예매자들에게 환불을 해주는 소동이 있었다. 영상물등급위원회의 모호한 심의 기준에 항의하는 목소리도 거셌다. 앞서 오지 오스본(Ozzy Osbourne), 마릴린 맨슨(Marilyn Manson), 디어사이드(Deicide) 공연이 확정됐을 때는 종교계의 거센 반발이 있었다.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은 열렬한 팬인 김정철이 평양 공연을 추진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됐다. 그럼 본격적으로 이번 호 <팝스팝스>에서 우리를 깜짝 놀라게 했던 내한공연을 소개하고자 한다.


아직도 활발하게 활동중인 클리프 리처드 ©Cliff Richard Official Website (www.cliffrichard.org)

기성세대에게 큰 충격을 안긴 클리프 리처드와 뉴 키즈 온 더 블록
클리프 리처드(Cliff Richard)는 대한민국 1세대 팝스타라고 할 수 있다. 올해로 50년이 된 명곡 <The Young Ones>는 한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1960년대 중반에 팬클럽이 생겼다. 그리고 1969년 10월, 세종문화회관과 이화여대 강당에서 총 3번의 공연을 펼쳤다. 이 공연은 국내 음악사에 길이 남을 사건이 됐다. 특히 마지막 공연 날에는 너무 많은 관객이 몰려 이화여대 운동장은 입장하지 못한 사람들로 가득 찼다. 공연장에서 소녀 팬들은 연신 비명을 질렀고, 대강당 입구 유리창이 깨지는 소동도 있었다. 여학생이 던진 손수건은 속옷을 던진 것으로 와전되어 연일 청소년 문제가 매체에 보도되기도 했다. 기성세대와 청소년은 문화적 차이로 충돌했고, 한 시민논단은 이 현상을 분석하는 토론회까지 열었다. 정부는 1970년대 초부터 장발과 미니스커트 등 외국의 퇴폐풍조를 단속하며 많은 것을 금지시켰다. 급기야 1972년 클리프 리처드가 다시 한국에서 공연을 하기로 했지만, 정부는 그가 장발이라는 이유로 공연을 취소시켰다. 이후 오랫동안 한국에서 팝스타의 공연을 볼 수 없었다.

클리프 리처드는 34년이 지난 2003년, 두 번째 내한공연을 펼쳤다. 소녀 팬들은 50대 중년이 되었지만 그를 잊지 않고 있었다. 한국에서의 인기는 비틀즈(Beatles)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 팝송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Summer Holiday>와 <Congratulations>는 알고 있었다. 감미로운 발라드 <Visions>는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의 <Love Me Tender>보다 더 인기가 좋았고, <Early In The Morning>은 1990년대 말 영화에 삽입되어 젊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편안한 <Evergreen Tree>, <Constantly>, 아름다운 발라드 <It's All In The Game>, <Miss You Nights>, 흥겨운 로큰롤 <I Could Easily Fall (In Love With You)>, 미국에서 최초로 Top 10에 오른 <Devil Woman>도 빠지지 않는다. 부드러운 미소로 따뜻하게 한국 팬들을 대했던 클리프 리처드는 지금도 최고의 팝스타로 기억된다.


아주 오래 전에 구한 내한공연 실황 LP

클리프 리처드 이후 수많은 여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든 레이프 가렛(Leif Garrett), 듀란듀란(Duran Duran)이 내한공연을 펼쳤을 때, 나는 너무 어렸다. 10대가 되고 이런저런 영어 단어들을 알아갈 무렵, 최고의 팝스타는 뉴 키즈 온 더 블록(New Kids On The Block)이었다. 이 다섯 청년들의 인기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했다. 미국에서는 2집 「Hangin' Tough」 이후 조금씩 인기가 떨어졌지만, 한국은 그와 정반대였다. 1990년에 발표한 앨범 「Step By Step」은 거의 모든 곡이 사랑을 받았다. <Step By Step>은 누구나 흥얼거릴 수 있는 팝송이었고, <Tonight>은 연일 TV 광고에 등장했다. 조던 나이트(Jordan Knight)의 팔세토 창법이 돋보인 발라드 <Let’s Try It Again>은 소녀 팬들을 완전히 녹여버렸다. 큰 음악적 변화를 보인 앨범 「Face The Music」은 미국에서 실패했지만, 한국에서 큰 사랑을 받았다.


2008년 재결성한 뉴 키즈 온 더 블록 ©New Kids On The Block Official Website (www.nkotb.com)

1991년 가을, 뉴 키즈 온 더 블록의 내한공연 소식이 보도된 직후 팬클럽은 완전히 뒤집어졌다. 팬들은 혹시 소문으로 끝나는 것은 아닌지를 걱정했지만,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의 공연은 거짓말처럼 성사됐다. 공연 하루 전인 1992년 2월 16일, 공항은 그들을 보기 위해 모인 열성 팬과 취재진들로 가득했다. 열광하는 소녀 팬들의 모습은 큰 사건처럼 뉴스에 보도되기도 했다. 원래는 3회 공연을 계획했지만, 한국 정부가 허락하지 않아 1회 공연만 하게 됐다. 전국의 팬들은 2월 17일 공연에 몰릴 수밖에 없었고, 공연은 초반부터 분위기가 과열되었다. 관객들은 점점 무대 앞으로 진입했고, 여학생들이 하나 둘 엎어지기 시작했다. 경찰들이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했을 때, 공연은 중단됐다. 여러 팬들이 구급차로 후송되었고, 공연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질서가 잡히고 공연이 재개되기까지는 3시간이 넘게 걸렸고, 이후에는 큰 사고 없이 공연이 진행됐다. 그 사이 공연장 사고 소식이 TV 뉴스를 통해 빠르게 전파됐고, 공연이 끝나자마자 주최측 대표는 연행되었다. 공연장에서 크게 다친 여학생 한 명이 끝내 사망하는 비극이 벌어졌고, 언론과 기성세대들은 철없는 청소년들을 비판하는 것에 열을 올렸다. 취약한 공연 문화와 개선점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고, 연일 큰 사회 문제로 ‘뉴키즈 소동’을 보도했다. 이후 여러 내한공연들이 취소되는 아픔도 겪었다. 음반 시장은 호황을 맞았지만, 공연은 대부분 프로모션 투어로 대체되었다. 당시 프로모션차 한국을 방문한 밴드 스틸하트(Steelheart)의 밀젠코 마티예비치(Miljenko Matijevic)는 기자에게 한국에서 공연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묻기도 했다. 1990년대 중반에 공연했던 브라이언 아담스(Bryan Adams)와 리차드 막스(Richard Marx)는 ‘한국 공연장의 엄청난 경찰들’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을 정도다. 뉴 키즈 온 더 블록의 도니 월버그(Donnie Wahlberg)는 한국을 “굉장히 열정적이면서도 팬들과 격리된 몇 안 되는 곳”으로 회상한다. 뉴 키즈 온 더 블록은 그 사건으로 본의 아니게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팝 그룹이 되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내한공연들


한국에서 공연하는 게 매우 힘들었던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 (사진제공: 소니뮤직)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이 한국에서 공연하는 건 다른 팝스타보다 몇 배는 더 힘들었다. 1989년부터 꾸준하게 추진한 내한공연은 1993년 확정되었지만, 사고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공연불가 판정을 받았다. 마이클의 적극적인 의지도 통하지 않았다. 결국 그의 첫 공연은 1996년 10월에 성사되었는데, 기독교 단체를 비롯한 여러 민간 단체에서 공연을 반대해 허가가 늦어지기도 했다. 그렇게 많은 우여곡절을 겪고 마이클이 한국에 도착했을 때, 공항에는 팬보다 더 많은 경호원이 있었다. 우려했던 큰 사고는 없었고, 모든 매체가 그를 주목했다. 마이클 잭슨은 한국 방문 자체로 큰 사회적 이슈를 만들어냈다. 무사히 공연을 마치고 한국에 큰 감동을 받은 그는 다시 한국을 찾겠다는 약속을 했고, 3년 뒤 ‘마이클 잭슨과 그의 친구들’이라는 공연으로 약속을 지켰다.


추억의 팝스타가 아니었던 포크의 전설 밥 딜런 (사진제공: 소니뮤직)

1994년 올림픽공원 잔디마당에서 열린 존 덴버(John Denver)의 그린 콘서트는 7살 이하 어린이의 무료 입장이 가능해 가족 단위로 즐길 수 있는 공연이 됐다. 그러나 ‘세계를 깨끗이, 한국을 깨끗이’라는 주제의 환경보호 콘서트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관객이 보였지만 별다른 제재가 없었다. 관객들이 싸온 음식들로 인해 야외 공연장은 쓰레기가 넘쳤고, 심지어 오징어를 파는 잡상인도 있었다. 한편 같은 장소에서 1996년에 열린 산타나(Santana)의 공연은 최고의 재미와 감동을 선사했다. 산타나가 지금과 같은 인기를 끌기 전이었고 연주 중심의 공연이었지만, 3시간 가까운 공연은 지루할 틈이 없었다. 공연 시간이 길었던 이유는 산타나가 한국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에 감동해 예정에 없던 곡들을 1시간이나 더 연주했기 때문이다. 거장 밥 딜런(Bob Dylan)은 2010년에 처음 한국을 찾았다. TV에서는 이 공연을 추억의 팝스타가 펼치는 디너쇼처럼 광고했지만, 라이브 편곡은 오리지널보다 훨씬 강렬했다. 세월의 흔적과 깊이가 느껴지는 그의 목소리는 거칠었고, <Knockin’ On Heaven’s Door>나 <One More Cup Of Coffee>를 기대했던 일부 관객들은 무난하지 않은 곡들을 견디지 못하고 공연장을 빠져나갔다. 하지만 <Like A Rolling Stone>을 연주할 때 관객들은 우르르 펜스에 몰려들어 그 곡을 따라 불렀고, 밥 딜런 월드 투어에서 보기 드문 추가 앵콜곡으로 <Blowin’ In The Wind>를 들을 수 있었다.


한국을 사랑하는 제이슨 므라즈 (사진제공: 워너뮤직)

이웃나라 일본에 비해 훨씬 열광적인 한국 팬들에게 홀딱 반한 아티스트도 많다. 대표적으로 메가데스(Megadeth), 드림 시어터(Dream Theater), 뮤즈(Muse), 미카(Mika), 제이슨 므라즈(Jason Mraz)를 손꼽을 수 있는데, 대부분 올해 또는 내년에 한국에서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이처럼 좋은 공연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지만, 아직 열악한 공연 시설과 문화는 개선이 필요하다. 가까운 예로 최근 관람한 엑스 재팬(X-Japan)과 화이트스네이크(Whitesnake) 내한공연 사운드는 끔찍한 수준이었다. 이제는 질적 성장이 필요한 시점이다.

SK 하이닉스 웹진 하이진 2012년 5월호 원고 [ 기사원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