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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그래미 어워드와 브릿 어워드_ 2012년 기사

팝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2월이 오면 연말처럼 마음이 들뜬다. 미국과 영국을 대표하는 음악 축제인 그래미와 브릿 어워드가 열리기 때문이다. 1959년부터 시작하여 올해로 54회를 맞은 그래미 어워드는 보수적이고 미국적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최고 권위와 인지도를 자랑한다. 상에 별 관심 없을 것 같은 가수 임재범도 토크쇼에서 “내 최종 목표는 그래미”라고 말했을 정도다. 그만큼 전세계 뮤지션들의 선망의 대상이 됐다. 그래미를 수상한 앨범들은 발매일과 무관하게 다시 미국차트 상위권에 오른다. 이게 그래미의 힘이다. 한편 1977년부터 시작하여 올해로 32회를 맞은 브릿 어워드는 더 대중적이고 개방적이다. 국내 음악 팬들에게는 그래미 못지않게 친근한 시상식이기도 하다. 브릿 어워드는 광범위한 장르를 시상하는 그래미와 달리 아티스트 중심이다. 오아시스(Oasis)와 콜드플레이(Coldplay), 뮤즈(Muse) 같은 영국 밴드 인기가 높은 국내에서는 TV와 신문 같은 전통 매체보다 인터넷 웹진과 팬클럽에서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 자국과 달리 해외 아티스트 시상은 다소 긴장감이 떨어지는 게 유일한 흠이다. 그럼 지금부터 올해 수상 결과를 중심으로 어떤 음악들이 평단과 대중의 사랑을 받았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54회 그래미 어워드
54회 그래미 어워드는 지난 2월 13일(현지시간 12일) 미국 LA 스테이플스 센터에서 열렸다. 시상식은 전야제 참석을 위해 LA에 머무르고 있던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 그녀를 추모하는 분위기로 비교적 차분하게 진행됐다. 가장 드라마틱했던 것은 제니퍼 허드슨(Jennifer Hudson)이 예정된 레퍼토리 대신 <I Will Always Love You>를 부른 장면이었다. 그녀는 3년 전인 51회 시상식에서 베스트 리듬 앤 블루스 앨범을 수상했는데, 당시 시상자로 트로피를 건넨 게 휘트니 휴스턴이었다.

미리 예정된 추모 무대도 있었다. 보니 레이트(Bonnie Raitt)와 앨리샤 키스(Alicia Keys)가 듀엣으로 지난 1월 사망한 미국의 전설적인 싱어 에타 제임스(Etta James)를 추모했다. 수상은 하지 못했지만 브루노 마스(Bruno Mars), 리아나(Rihanna), 콜드플레이의 공연은 화려했고, 특히 노장들의 무대가 눈길을 끌었다. 오프닝은 미국 서민들을 대변하며 보스(Boss)로 불린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이 맡았고, 결성 50주년을 맞은 비치 보이스(The Beach Boys)와 공로상을 수상한 글렌 캠벨(Glen Campbell)은 후배들과 합동 공연을 펼쳤다. 전설의 비틀즈(The Beatles) 멤버였던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는 신곡과 비틀즈 메들리를 선사했다. 이처럼 놀라웠던 퍼포먼스와 달리 수상결과는 큰 이변이 없었다. 6개 부문 후보에 오른 아델(Adele)은 6개의 트로피를 싹쓸이했다. 밴드 푸 파이터스(Foo Fighters)는 록 부문을, 카니예 웨스트(Kanye West)는 랩 부문을 휩쓸었다. 그래미 특유의 ‘몰아주기 관행’은 여전했다.  


주요 부문 수상자
올해의 레코드: Adele - Rolling In The Deep
올해의 앨범: Adele - 21
올해의 노래: Adele - Rolling In The Deep
최우수 신인상: Bon Iver
베스트 팝 앨범: Adele - 21
베스트 댄스/일렉트로니카 앨범: Skrillex - Scary Monsters And Nice Sprites
베스트 록 앨범: Foo Fighters - Wasting Light
베스트 리듬 앤 블루스 앨범: Chris Brown - F.A.M.E.
베스트 랩 앨범: Kanye West -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
베스트 컨트리 앨범: Lady Antebellum - Own The Night



32회 브릿 어워드
32회 브릿 어워드는 지난 2월 22일(현지시간 21일) 영국 런던 02 아레나에서 열렸다. 올해도 제임스 코든(James Corden)의 사회와 화려한 공연들을 볼 수 있었다. 오프닝은 영국을 대표하는 밴드 콜드플레이가 맡았고, 플로렌스 앤 더 머신(Florence & The Machine)과 아델도 열정적인 무대를 선사했다. 5월 28~29일 내한공연이 확정된 오아시스의 노엘 갤러거(Noel Gallagher) 무대에서는 콜드플레이의 크리스 마틴(Chris Martin)이 피아노를 맡았다. 공로상을 받은 밴드 블러(Blur)는 피날레를 장식하며 대표곡들을 연주했다.

구조상 그래미 같은 싹쓸이는 불가능했지만, 브릿 어워드의 주인공도 아델이었다. 그녀는 올해의 앨범과 영국 여자 가수상을 수상했다. 에드 시런(Ed Sheeran)은 신인상과 영국 남자 가수상을 수상하며 아델과 함께 2관왕에 올랐고, 원 디렉션(One Direction)이 <What Makes You Beautiful>로 최우수 싱글을 수상한 건 작은 이변이었다. 그래미와 브릿 어워드에서 모두 공연한 브루노 마스와 리아나는 각각 해외 남자 가수상과 여자 가수상을 수상했다. 시상식 막판에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사회자 제임스 코든이 시간 문제로 아델의 올해의 앨범 수상 소감을 자르고 피날레 공연을 소개했기 때문이다. 아델은 사회자에게 불쾌감을 표출했고, 주최측에 항의하는 뜻으로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시상식이 끝나고 주최측은 아델에게 사과의 뜻을 전한다는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주요 부문 수상자
올해의 노래: One Direction - What Makes You Beautiful
올해의 앨범: Adele - 21
올해의 남성 솔로 아티스트: Ed Sheeran (영국) / Bruno Mars (해외)
올해의 여성 솔로 아티스트: Adele (영국) / Rihanna (해외)
올해의 신인: Ed Sheeran (영국) / Lana Del Rey (해외)
올해의 그룹: Coldplay (영국) / Foo Fighters (해외)
공로상: Blur


21세기 팝의 상징이 된 아델 ⓒXL recordings (사진제공: 강앤뮤직)

아델(ADELE)
2012년 3월 17일자 빌보드 앨범차트 1위는 아델의 2집 「21」이다. 4년 전에 발매된 데뷔작 「19」도 7위에 올랐다. 그녀는 작년 1월에 발매된 2집으로 올해 그래미와 브릿 어워드를 석권했다. 데뷔작으로 신인상을 받았고, 앨범 2장으로 그래미 주요 부문을 모두 수상하는 진기록도 세웠다. 노장에 대한 예우가 강하고 미국적인 그래미가 젊은 영국 아티스트의 손을 들어준 건 그만큼 그녀가 대단했다는 것을 증명한 결과다.

앨범 「21」은 소포모어 징크스도 가볍게 넘어섰다. 클래식과 모던이 공존하는 리듬 앤 블루스와 매력적이고 드라마틱한 음성으로 음악팬들을 사로잡았다. 미국과 영국 앨범차트에서 모두 20주 넘게 정상을 지켰고, 26개국 차트 1위를 차지했다. 전세계 판매량은 곧 2000만장을 넘을 것이다. 히트곡도 굉장하다. <Rolling In The Deep>을 시작으로 <Someone Like You>, <Set Fire To The Rain>이 모두 미국차트 1위를 기록했다. 자국인 영국에서의 인기는 더욱 돋보인다. 이미 21세기 앨범 최고 판매량을 기록하며 영국에서만 400만장 넘게 팔려나갔다. 이건 영국 역대 앨범 판매량 5위권에도 드는 어마어마한 수치다. 이게 메이저도 아닌 인디 레이블에서 거둔 성과라는 것도 놀랍다. 이런 폭발적인 인기 덕에 최근엔 공연실황 「Live At The Royal Albert Hall」이 영상과 음반으로 발매됐다. 21세기에 아델을 듣지 않는 건 1980년대에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을 듣지 않은 것과 같다.


아델의 2집 「21」 ⓒXL recordings (사진제공: 강앤뮤직)

 


그래미 어워드 신인상을 수상한 본 이베어 (사진제공: 강앤뮤직)

본 이베어(BON IVER)
이번 그래미 어워드의 작은 이변은 인디 뮤지션 본 이베어(Bon Iver)가 2집 앨범으로 신인상을 수상한 것이었다. 거기에 최우수 얼터너티브 앨범까지 수상하며 2관왕에 올랐다. 불어로 “좋은 겨울”을 뜻하는 본 이베어는 미국 인디 포크 뮤지션 저스틴 버논(Justin Vernon)을 주축으로 2007년 결성되었다. 데뷔작 「For Emma, Forever Ago」는 2008년 전세계적으로 발매되어 성공을 거두었다. 저스틴이 예전 밴드의 해산, 여자친구와의 이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병까지 얻는 절망 속에서 자연스럽게 치유의 음악들을 만든 것이 본 이베어의 시작이다. 반어적 의미로 썼던 밴드명을 아예 타이틀로 삼은 2집 「Bon Iver」는 미국 앨범차트 2위까지 오르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리고 지난 겨울, 이 앨범은 내 최고의 BGM이 됐다. 늘 기다려왔던 음악을 만난 기분이었다. 외로움과 상실감을 담아 가슴으로 만든 음악을 평온한 마음으로 맞이했을 때, 그 이상의 무언가는 필요치 않았다. 그냥 이 앨범을 듣는 자체가 좋은 위로였다. 싱글 <Holocene>은 영화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에 삽입됐다. 작지만 희망과 기운을 안기는 대사, 섬세하게 배치된 음악들이 매력적이었던 영화와도 기막히게 잘 어울렸다. 진지한 열정으로 대중과 평단을 사로잡은 본 이베어의 후속작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화사하고 따뜻한 봄부터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아이처럼 말이다.


절망과 무력감에 빠진 이들을 위로하는 음악, 2집 「Bon Iver」 (사진제공: 강앤뮤직)


그래미 5관왕을 차지한 밴드 푸 파이터스 (사진제공: 소니뮤직)

푸 파이터스(FOO FIGHTERS)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이 죽고 너바나(Nirvana)도 끝났다. 상대적으로 가려졌던 멤버 중 드럼을 쳤던 데이브 그롤(Dave Grohl)은 커트처럼 기타를 치고 노래를 시작했다. 그리고 푸 파이터스(Foo Fighters)라는 밴드를 만들었다. 그렇게 17년이 지난 지금, 푸 파이터스는 미국을 대표하는 대형 밴드가 됐다. 11개의 그래미 트로피와 3개의 브릿 어워드 트로피를 손에 넣었고, 7개의 정규 앨범은 미국에서만 700만장이 넘게 팔렸다. 특히 이번 그래미 어워드에서는 베스트 록 앨범과 노래 등 5관왕을 차지했고, 멋진 축하 공연도 펼쳤다. 그리고 브릿 어워드에서도 올해의 해외 그룹상을 수상했는데, 시상자가 전설의 퀸(Queen) 멤버들이었다. 비틀즈에 비교하면 커트 코베인은 존 레논(John Lennon), 데이브 그롤은 폴 매카트니 같다. 너바나에 비해 푸 파이터스 멜로디가 더 간결하고 명료했다. 작년에 발매된  「Wasting Light」은 아날로그 방식으로 녹음한 뜨거운 앨범인데, 무엇보다 넘치는 에너지로 록은 죽지 않았다는 걸 보여줬다. 이 앨범에 수록된 <White Limo>로 그래미 최우수 하드록/메탈 퍼포먼스를, <Walk>로 최우수 록 노래와 퍼포먼스를 수상했다. 누군가 현재 미국을 대표하는 밴드가 누구냐고 물어볼 때, 나는 푸 파이터스라고 대답한다.


록은 죽지 않았다는 걸 보여준 앨범 「Wasting Light」 (사진제공: 소니뮤직)

WHITNEY HOUSTON
너무나 갑작스러웠던 죽음, 결국 예정에 없던 그녀 이야기로 이 글을 마무리하게 됐다. 지난 2월 11일, 휘트니 휴스턴이 호텔 객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작년 7월 세상을 떠난 에이미 와인하우스(Amy Winehouse)처럼 불안한 느낌이 있었지만, 멋지게 재기할 줄 알았는데 너무 허무하게 가버렸다. 그리고 나는 며칠 뒤 오랜만에 그녀의 베스트 앨범 시디를 꺼내 목소리를 들었다. 당찬 <Saving All My Love For You>가 애절하게 들렸고, <I Will Always Love You>와 <Greatest Love Of All>은 슬픈 이별의 노래처럼 들렸다.

나는 고등학생 시절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를 더 좋아했지만,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까지 휘트니 휴스턴의 인기는 가히 최고였다. 그래미를 6번이나 수상했고, 21회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서는 「The Bodyguard Soundtrack」과 <I Will Always Love You>로 8관왕을 차지했다. 미국에서만 11개의 1위곡을 탄생시켰고, 6000만장 이상의 앨범이 팔렸다. 지난 3월 17일자 빌보드 앨범차트 10위권에는 휘트니의 앨범만 3장이 있었다.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목소리를 그리워한다. 내가 가장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은, 21회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서 <I Have Nothing>을 열창했던 장면이다. 그 강렬한 모습 때문에 더더욱 노래 잘하는 가수로 기억될 그녀가 49년 짐을 버리고 훌쩍 떠났다. 안녕, 휘트니 휴스턴.


지난 2월 11일 세상을 떠난 고(故) 휘트니 휴스턴 (사진제공: 소니뮤직)


휘트니 휴스턴의 베스트 앨범 「The Essential」 (사진제공: 소니뮤직)

SK 하이닉스 웹진 하이진 2012년 4월호 원고 [ 기사원문 ]

이것은 2013년이 아닌 2012년 기사. 올해는 그래미 후기를 절반쯤 쓰다가 너무 바빠서, 그렇게 결국 늦어져서 포기했다. 아... 작년 휘트니 소식처럼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