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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여유와 깊이를 느낄 수 있는 앨범, 마릴린 맨슨(Marilyn Manson)의 'Born Villain'


01 Hey, Cruel World... 
02 No Reflection
03 Pistol Whipped
04 Overneath the Path of Misery
05 Slo-Mo-Tion
06 The Gardener
07 The Flowers of Evil
08 Children of Cain
09 Disengaged
10 Lay Down Your Goddamn Arms
11 Murderers Are Getting Prettier Every Day
12 Born Villain
13 Breaking the Same Old Ground

Bonus Track 

14 You're So Vain (Feat. Johnny Depp) 

마릴린 맨슨(Marilyn Manson)은 ‘매력적인 악당’이다. 반짝하고 사라질 것이란 전망도 있었지만, 데뷔 20주년이 코앞이다. 그들이 아직 활동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누군가는 쓴웃음을 지을 것이다. 이처럼 찬사와 비난을 한꺼번에 받은 아티스트도 흔치 않다. 프론트맨 미스터 맨슨(Mr. Manson - 이하 맨슨으로 표기)은 매우 영리한 인물이다. 미국 문화의 대표적 키워드인 폭력과 섹스를 역이용했고, 예술적 영감을 주는 사타니즘을 표면화하여 종교계와 보수 세력의 표적이 됐다. 무대에서 보여준 충격적인 퍼포먼스 덕에 터무니없는 소문도 끊이질 않았다. 맨슨이 최악으로 여기는 황당한 소문은 그가 미국 드라마 ‘케빈은 12살(The Wonder Years)’의 주인공 친구로 출연했다는 것인데, 문제는 그리 똑똑하지 못한 캐릭터였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이 소문을 믿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어디 그뿐인가. 호러영화처럼 끔찍한 소문과 추측도 무성했다. 그런데도 견고한 팬덤을 흔들지는 못했다. 시각적, 청각적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 마릴린 맨슨은 특히 젊은 팬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으며 뒤틀어진 영웅이 됐다. 탈출구가 필요했던 청소년들의 삶을 바꿔놓기도 했다. 물론 기성세대의 우려처럼 나쁜 방향은 아니었다.

친근한 록스타가 된 교주
저널리스트로 음악계에 입문한 맨슨은 1989년 플로리다에서 마릴린 맨슨 앤 스푸키 키즈(Marilyn Manson & The Spooky Kids)를 결성했다. 1993년 클럽 공연으로 트렌트 레즈너(Trent Reznor)의 관심을 끌었고, 그의 도움으로 데뷔작 「Portrait Of An American Family」(1994)도 완성할 수 있었다. 앨범은 트렌트 레즈너의 레이블 Nothing에서 발표했고,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 공연의 오프닝 밴드로 출연하기도 했다. 이처럼 트렌트 레즈너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지만, 처음부터 큰 인기를 끌진 못했다. 그러나 이후 발표한 앨범들이 연이어 성공하면서 데뷔작도 뒤늦게 주목받았다. 그 결과로 앨범은 영국과 미국에서 골드를 기록했다. 커버곡과 리믹스 곡을 수록한 비정규앨범 「Smells Like Children」(1995)은 유리스믹스(Eurythmics) 곡을 커버한 <Sweet Dreams (Are Made Of This)>가 인기를 끌며 주목받았다. 앨범은 미국에서 플래티넘을 기록했다.

밴드의 2집이며 최고 역작인 「Antichrist Superstar」(1996)는 모두를 놀라게 했다. 맨슨은 물론 트렌트 레즈너, 트위기 라미레즈(Twiggy Ramirez)의 활약이 모두 돋보였다. 가사와 편곡 수준도 매우 훌륭했다. 그때 나도 호기심으로 이 앨범을 샀는데, 오프닝 <Irresponsible Hate Anthem>에서 <The Beautiful People>로 이어지는 짜릿한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앨범은 미국에서만 2백만장 가깝게 판매됐다. 트렌트 레즈너의 그늘에서 벗어난 3집 「Mechanical Animals」(1998)는 발매 첫 주에 미국 앨범차트 1위를 차지했다. 영국 차트에서도 처음으로 10위권에 진입했다. 데이빗 보위(David Bowie)의 영향력을 느낄 수 있었고, 음악은 더 화려해졌다. 골수팬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Rock Is Dead>가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고, <I Don't Like The Drugs (But The Drugs Like Me)>와 <Coma White>가 주목을 받았다. 분노의 교주로 불린 맨슨은 점점 친근한 록스타가 되어가고 있었다. 첫 공식 라이브 앨범 「The Last Tour On Earth」(1999)는 밴드의 뛰어난 라이브 실력을 확인시켜줬다. 맨슨의 섬뜩한 멘트들을 그대로 삽입하여 현장감도 넘쳤다. 이때만 해도 한국에서 그들의 공연을 보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4집 「Holy Wood (In The Shadow Of The Valley Of Death)」(2000)는 미국과 영국에서 조금 부진했으나 다른 국가에서 인기를 끌며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맨슨은 비틀즈(The Beatles)의 「The Beatles(White Album)」(1968)와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s)의 「Let It Bleed」(1969)에서 영감을 받은 어두운 앨범이라고 밝혔다. 그의 여전한 영향력 때문인지 학부모와 종교 단체의 반발도 더욱 거세졌다. 트위기의 탈퇴로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던 5집 「The Golden Age Of Grotesque」(2003)도 생각보다 좋은 반응을 얻었다. ‘Grotesk Burlesk Tour’의 일환으로 첫 내한공연도 성사됐다. 이후 베스트 앨범 「Lest We Forget: The Best Of」(2004)가 공개됐다. 6집 「Eat Me, Drink Me」(2007)는 상업적으로 실패했지만, 국내에서 괜찮은 반응을 얻었다. 이혼이라는 개인적인 아픔을 겪고 만든 약간은 감성적인 앨범이었다. 트위기가 복귀한 7집 「The High End Of Low」(2009)는 맨슨의 설명처럼 무겁고 냉혹했다. 맨슨이 장엄한 서사시로 표현한 <Into The Fire>는 아주 멋진 곡이었고, <Arma-goddamn-motherfuckin-geddon>은 「Mechanical Animals」 시절을 떠오르게 했다. 밴드는 이 앨범을 끝으로 인터스코프(Interscope)와 결별했다.

매력적인 첫 싱글과 조니 뎁의 참여로 화제를 모은 신작
2012년 신작인 8집 「Born Villain」은 처음 음악을 만들었을 때의 야망과 결단력을 가지고 작업했다. 맨슨은 첫 번째 레코드를 만드는 것 같다고 회상했는데, 사운드는 초기 앨범들과 달랐다. 맨슨은 신작 사운드를 ‘자멸하는 데스 메탈’로 묘사하기도 했다. ‘The High End Of Low Tour' 때인 2009년부터 곡을 썼고, 데이빗 보위(David Bowie)의 「Aladdin Sane」(1973)과 약간 비슷한 느낌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2010년 11월 트위기는 준비 중인 신작이 「Mechanical Animals」보다 좀 더 펑크 록에 가깝고, 밴드 최고의 앨범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11년 2월엔 드러머 진저 피쉬(Ginger Fish)가 밴드를 탈퇴했고, 대신 스매쉬 마우스(Smash Mouth)에서 활동했던 제이슨 서터(Jason Sutter)가 합류했다. 첫 싱글 <No Reflection>은 지난 3월 13일 디지털로 공개됐다. 리듬에 중점을 둔 인더스트리얼 메탈 사운드를 선사한 이 곡은 「Antichrist Superstar」 시절이 연상된다는 매체의 호평과 더불어 팬들의 찬사도 이어졌다. 뮤직 비디오는 4월 4일 유튜브 페이지를 통해 공개됐다. 맨슨과 절친한 배우 조니 뎁(Johnny Depp)과의 작업도 화제가 됐다. 보너스 트랙으로 칼리 시몬(Carly Simon) 곡을 커버한 <You're So Vain>이 수록됐는데, 조니 뎁이 리드 기타와 드럼을 맡았다. 지난 4월 11일에는 리볼버 골든갓 어워즈(Revolver Golden Gods Awards)에서 공연한 밴드의 기타리스트로 출연, <Sweet Dreams (Are Made Of This)>와 <The Beautiful People>을 함께 연주하기도 했다. 관객들은 연신 사진을 찍느라 분주했다.

오랜 팬들은 더 이상 특별한 걸 기대하기 어렵다는 회의적인 시각도 갖고 있는데, 오프닝 트랙 <Hey, Cruel World>와 영화 주제곡 느낌의 <Lay Down Your Goddamn Arms>처럼 대중적인 곡들은 확실히 의견이 분분할 것으로 보인다. 초기의 보컬 이펙터 활용은 적절했지만, 점점 이펙터에 의지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우려 섞인 지적도 있다. 포스트 펑크의 영향력이 느껴지는 <Pistol Whipped>. <The Flowers Of Evil>의 사운드는 흥미롭다. 맨슨은 바우하우스(Bauhaus), 버스데이 파티(Birthday Party), 조이 디비전(Joy Division), 킬링 조크(Killing Joke) 등 1980년대 밴드에게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 불꽃튀는 리프와 미끄러지는 느낌의 비트가 매력적인 인더스트리얼 넘버 <Overneath The Path Of Misery>, 육중한 리듬감이 돋보이는 베이스를 앞세운 <Slo-Mo-Tion>, 블루지한 리프와 댄서블한 비트가 조합된 <The Gardener>, 수록곡 중 가장 빠르고 격렬한 <Murderers Are Getting Prettier Ev>도 인상적이다. 5분을 넘기는 드라마틱한 타이틀곡 <Born Villain>, 무거운 분위기의 블루지한 슬로우 넘버 <Breaking The Same Old Ground>는 ‘웅장하고 드라마틱한 콘셉트 앨범’이라는 맨슨의 설명을 뒷받침해 준다. 이제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그만큼의 여유와 깊이도 가지고 있는 앨범이다.

핫트랙스 매거진 2012년 5월호 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