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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50주년을 기록하는 거장의 서사시, 밥 딜런(Bob Dylan)의 'Tempest'


01 Duquesne Whistle 
02 Soon After Midnight 
03 Narrow Way 
04 Long And Wasted Years 
05 Pay In Blood 
06 Scarlet Town  
07 Early Roman Kings 
08 Tin Angel 
09 Tempest 
10 Roll On John 

창작과 투어를 게을리하지 않은 21세기의 밥 딜런
베스트를 지나 본격적으로 밥 딜런(Bob Dylan) 정규 앨범을 들었을 때, 그는 이미 노장 대접을 받고 있었다. 재기에 성공했다는 평을 받은 [Time Out Of Mind](1997)의 발매와 그래미 수상 소식을 들은 기억도 있다. 사실 그때 나는 현재보다 과거의 밥 딜런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었다. 고유의 틀을 부수고 포크 록 혁명을 일으킨 시기의 음악들을 접하면서 귀가 열렸기 때문이다. 취향에 맞지 않는다는 핑계로 넘긴 미국적인 음악들도 조금씩 적응하게 되었다. 나이가 어렸기 때문일까, 유치하게도 음악 듣는 수준이 높아졌다는 착각에 빠졌다. 하지만 마음은 초조하고 조급했다. 익숙해질수록 더 많이, 그리고 깊이 들어야 했던 밥 딜런의 음악 세계는 끝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전부’도 아닌 ‘절반’의 앨범을 마스터하는데 꼬박 10년이 걸렸다. 어느덧 60대 중반이 된 밥 딜런은 [Modern Times](2006)라는 앨범으로 30년 만에 미국 차트 1위를 차지했고, 그 뒤를 이어 ‘아임 낫 데어’라는 영화도 개봉되었다. 그제야 나는 현재의 밥 딜런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노쇠해진 모습은 감출 수 없었지만, 밥 딜런은 2000년대에도 창작과 투어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1991년부터 시작된 오피셜 부틀렉 시리즈(The Bootleg Series) 발매도 재개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거의 해를 거르지 않고 새로운 아이템을 만날 수 있었다. 2009년에는 최초로 미국과 영국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한 앨범 [Together Through Life]와 수익금 전액을 미국 기아퇴치 자선단체에 기부한 최초의 크리스마스 앨범 [Christmas In The Heart]를 발표했다. 같은 해에 밥 딜런 정규 앨범 2장을 만나는 것은 처음 경험해보는 일이었다. 그리고 2010년에는 첫 내한공연이 성사되었다. 기획사는 ‘Knockin' On Heaven's Door’와 ‘One More Cup Of Coffee’를 BGM으로 내세우며 추억의 팝 가수처럼 공연을 홍보했지만, 그 곡들은 연주되지 않았다. 잔잔한 포크 콘서트를 기대한 중년층의 팬들은 세월이 반영된 밥 딜런의 거친 보이스와 강렬한 사운드를 버거워하며 중간에 공연장을 빠져나갔다. 반면에 젊은 팬들은 앵콜로 ‘Like A Rolling Stone'이 연주되자 우르르 펜스로 몰려들었고, 밥 딜런보다 더 뛰어난 가창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내한공연에 버금가는 또 하나의 이벤트는 모노로 녹음된 초기작 LP 8장을 세심하게 복원한 한정판 박스세트 [The Original Mono Recordings]의 발매였다. 1960년대 당시의 밥 딜런은 모노 녹음과 믹싱에 심혈을 기울였고, 스테레오 채널 작업은 스튜디오 엔지니어들에게 맡겼다. 한마디로 모노 녹음은 그가 들려주길 원했던 사운드와 훨씬 가깝다는 것을 의미했다. 소리에 민감한 마니아들은 환호할 수밖에 없었다. 박스세트와 같은 날에 발매된 오피셜 부틀렉 [The Witmark Demos: 1962–1964]도 매력적이었다. 통기타 시절인 초기 밥 딜런 세션을 수록한 이 앨범은 20대 초반의 그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완벽한 ‘아날로그 아카이브’다. 팬들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딜런 세계’를 만끽했다.


ⓒSony Music

딜런의 카탈로그를 빛낼 또 다른 마스터피스의 탄생
2012년은 밥 딜런 데뷔 50주년과 인권단체인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 설립 50주년이 겹치는 해다. 올해 초에는 그것을 기념하는 4장짜리 밥 딜런 트리뷰트 앨범이 발매되었다. 밥 딜런의 초기 곡인 ‘Chimes Of Freedom’은 앨범 타이틀로 결정되었고, 오리지널 버전을 앨범에 수록하기도 했다. 여러 아티스트가 녹음했거나 라이브로 연주한 밥 딜런 곡을 70곡 이상 수록한 이 앨범의 수익금 전액은 국제사면위원회에 기부하기로 했다. 이처럼 연초부터 훈훈한 소식을 전한 밥 딜런은 지난 7월, 오피셜 사이트를 통해 신작 발매 일정을 공개했다. 영국은 9월 10일, 미국은 상징적인 9월 11일로 발매일이 확정되었다. 한편 [Tempest]라는 타이틀은 밥 딜런의 마지막 앨범이 될 것이라는 루머를 만들기도 했다. ‘템페스트’는 영국의 시인이며 극작가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팬들은 신작 타이틀을 암시로 받아들였다. 그렇지만 밥 딜런은 “셰익스피어 작품과 내 앨범 타이틀이 명백하게 다르다”며 루머를 일축했다.

올해 1월부터 레코딩을 시작한 이번 앨범에는 총 10곡이 수록되었다. 그리 많은 곡은 아니지만, 러닝타임은 2000년대에 발표한 앨범 중 가장 길다. [Time Out Of Mind]처럼 대곡 지향적이고, 그만큼 가사의 비중도 크다. 이처럼 방대한 가사를 모두 부클릿에 실었다면 별도의 책자가 필요했을 것 같다. 앨범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무덤덤하면서도 조금 어두운 느낌이 있다. 탑 트랙이며 첫 싱글인 ‘Duquesne Whistle’는 고전적이고 희극적이다. 꼿꼿한 베이스와 드럼, 힘을 뺀 밥 딜런의 허스키한 보컬이 어우러진 정겨운 업템포 곡으로 재지한 느낌도 있다. 나른한 선율과 부드러운 보컬을 중심으로 느긋하게 전개되는 ‘Soon After Midnight’는 후속 싱글로 손색없는 3분대의 무난한 곡이다. 슬라이드 기타를 선보이는 ‘Narrow Way’는 머디 워터스(Muddy Waters) 풍의 리프가 인상적인 블루스 넘버로 질주감을 느낄 수 있다. 특유의 ‘무심한 창법’이 낯설지 않은 ‘Long And Wasted Years’는 1960년대 중반의 히트곡을 공연장에서 듣는 기분이다. 내한공연에서도 연주한 ‘Just Like A Woman’을 예로 들을 수 있겠다.

예측과 해석이 어려운 스토리는 한층 다양해졌다. 앞선 곡들의 예스러운 느낌에 비해 현대적인 ‘Pay In Blood’는 자기 조롱이 담긴 가사를 거친 보이스로 노래한다. 롤링 스톤즈(The Rolling Stones)에서 가끔씩 리드 보컬을 맡는 키스 리차드(Keith Richards)처럼 냉랭한 창법과 깔끔한 리프가 매력적이다. 19세기 중엽 미국의 시인이며 노예해방론자인 존 그린리프 휘티어(John Greenleaf Whittier)의 구절을 참고한 ‘Scarlet Town’은 바이올린과 밴조가 신비하고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어둡고 혼란스러운 곡이다. 로스 로보스(Los Lobos)의 데이빗 히달고(David Hidalgo)가 아코디언을 연주한 ‘Early Roman Kings’는 딜런식 블랙 코미디가 담긴 블루스 넘버다. 사랑을 잃은 한 남자의 끔찍한 이야기를 꽤 직선적으로 표현하는 잔혹한 발라드 ‘Tin Angel’은 9분을 넘기는 대곡이다. 14분에 달하는 타이틀곡 ‘Tempest’는 ‘타이타닉’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서사시다. 스트링 콰르텟이 등장하는 이 곡은 절제된 연주와 정적인 흐름을 보여준다. 클로징 트랙 ‘Roll On John’은 존 레논(John Lennon)을 기리는 곡이다. 존은 비틀즈(The Beatles) 시절부터 밥 딜런의 영향력을 인정했지만, 밥 딜런이 존을 기리는 곡을 노래하는 것은 조금 뜻밖이다. 노랫말은 ‘A Day In The Life’, ‘The Ballad Of John And Yoko’, ‘Come Together’ 등 비틀즈 노래 일부를 인용했고, 서정적인 멜로디도 참고했다. 밥 딜런의 애처로운 보컬이 인상적인 이 느린 곡과 함께 앨범 [Tempest]는 차분하게 마무리된다.

앨범 발매를 앞두고 음악지 롤링 스톤과 모조,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언컷은 극찬과 함께 만점을 안겼다. 개인적인 기대감은 그렇게 높지 않아서 ‘지나친 예우’ 혹은 ‘성급한 판단’을 의심했는데, 부끄럽게도 그 의심은 앨범을 듣자마자 풀렸다. 힘있는 연주와 날카로운 보컬이 없는데도, 이 앨범은 압도적이다. 박수를 치진 않지만, 고개를 숙이게 된다. 나이를 먹어서 근사한 게 아닌, 나이를 먹어도 근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여전히 불가사의한 ‘딜런 매직’이 유효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무심한 듯 고집스럽고 독창적인 밥 딜런의 음악과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추천곡
Duquesne Whistle
Soon After Midnight
Long And Wasted Years
Pay In Blood
Tin Angel
Tempest
Roll On John

싸이월드 뮤직 2012년 9월 둘째주 이주의 앨범 원고 [ 원문보기 ]


[Tempest] 시디. 엄청나게 간결한 구성.

국내반에는 편집장님 해설지가 있어서 그나마 작은 위안이 되는.


  • loureed 2012.09.19 19:42

    잘봤습니다... 아직 들어보진못했지만, 완전 기대되네요... 저한텐 딜런신봉자가 된이후 첨맞는 신보발매네요... 그앨범이 무려 50주년기념작이라니...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