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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cert

라디오헤드(Radiohead) 지산 공연 후기

2012년 7월 27일,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

라디오헤드(Radiohead)만큼 힘들게 본 공연이 또 있을까? 없는 것 같다. 오래 기다려야했고, 많이 불편했다. 라디오헤드가 뒤늦게 한국을 찾은 건 사실이지만, 불편의 원인은 밴드가 아닌 페스티벌이었다. 엄청난 교통체증으로 예정보다 2시간은 더 늦게 도착했고, 공연을 보기도 전에 지쳐버렸다. 공연장 주변은 부르는 게 값인 ‘무허가 주차장’이 되어있었으니 뭐,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다. (덕분에 제임스 이하(James Iha)와 엠 워드(M. Ward) 공연은 모두 놓쳤다.)

(다소 일방적이긴 했지만) 솔로 공연보다 훨씬 강렬했던 엘비스 코스텔로(Elvis Costello) 공연을 다 보고 라디오헤드를 기다렸다. 예정된 시간이 다가오자 돗자리와 의자에 누워있던 관객들이 점점 앞으로 몰리기 시작했고, 밴드는 거의 정확히 시간을 맞춰 등장했다. 그리고 나는 본능적으로 눈을 크게 뜨고 진짜 라디오헤드가 맞는지를 확인하고 있었다.






분위기는 초반부터 제법 뜨거웠다. 팬들의 함성은 마치 “우리가 너희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느냐”고 항변하는 것 같았다. 오프닝으로 ‘Lotus Flower’가 연주될 때는 다들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 같아 보였지만, 조금씩 정신들을 차리며 음악에 빠져들었다. 나는 ‘Kid A’가 연주될 때부터 흥분하기 시작했는데, 관객들의 반응은 비교적 차분했다. [The King of Limbs] 앨범을 듣지 않은 팬들은 초반에 연주된 곡들이 조금 낯설었을 것이다. 하지만 공연장에서 직접 들은 최근 곡들은 예습유무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시켜줬다. 앨범 버전이 조금 버거웠거나 관심이 소홀해졌던 팬들은 모두 공연을 보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도 공연장에서 답을 찾았다. 라디오헤드가 음반보다 공연에 더 몰두하는 이유와 엄청난 흥행에 대한 해답을.






관객들은 ‘There There’가 연주될 때부터 박자를 맞추며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고, ‘Karma Police’에서 뜨겁게 폭발했다. 많은 부틀렉을 들어봤지만, 이렇게 무시무시한 ‘떼창’은 처음 들어본 것 같다. 멤버들도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공연은 점점 달아오르기 시작했고, ‘Idioteque’을 끝으로 멤버들이 퇴장하자 아주 뜨겁게 앵콜을 외쳤다. (나는 시계를 보며 두 곡 정도를 더 연주하고 끝내겠다고 생각했다.) 첫 앵콜곡으로 ‘Give Up the Ghost’를 연주한 밴드는 기대하지 않았던 ‘Exit Music (For A Film)’을 선사했다. 눈물이 나진 않았지만 가슴이 찡했다. 그리고 이어서 선사한 곡은 올해 거의 연주하지 않은 ‘Talk Show Host’였다. 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그 시절의 감성에 취해있을 때 ‘The National Anthem’이 시작됐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죽어도 좋다”는 얘기를 내뱉었다. 내가 공연에 앞서 (자주 연주되진 않지만) 꼭 듣고 싶다고 얘기했던 곡이다. (Karma Police와 Exit Music도...) 폭염에 지쳐 곧 쓰러질 것 같던 나는 몸동작이 점점 커졌고, 그건 다른 관객들도 마찬가지였다. 내 귀를 의심했던 ‘Planet Telex’에 이어 엔딩곡 분위기를 물씬 풍긴 ‘Everything In Its Right Place’가 연주됐다. 그리고 멤버들은 퇴장했다. 예정된 종료 시간은 밤 11시였지만, 시계는 11시 반을 향하고 있었다. 팬들은 더 열광적으로 앵콜을 외쳤고, 멤버들이 다시 무대에 섰다. 한국 팬들의 환대에 엄청나게 놀라고, 신기해하는 분위기였다. “Hi~"라는 인사가 처음이자 마지막 멘트일 것 같았던 톰 요크(Thom Yorke)도 제법 많은 멘트와 열정적인 퍼포먼스(심지어 웃통도 벗었다.)를 선보였다. 두 번째 앵콜로 ‘Reckoner’를 연주하고 멤버들이 퇴장했을 때 공연이 모두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세 번째 앵콜로 이어졌다. 진짜 마지막 곡으로 연주된 곡은 도입부부터 모두를 미치게 만든 ‘Paranoid Android’였다. 이 곡이 연주되었을 때는 그냥 반쯤 미쳐서 노래를 따라 부른 기억밖에 나지 않는다.









90분으로 예정된 페스티벌 무대였지만, 2시간을 훨씬 넘겼다. 다른 나라에서 펼친 단독 공연과 큰 차이가 없는, 오히려 더 특별한 무대였다. 이틀 뒤에 공연한 일본 후지 록 페스티벌보다 두 곡 더 많은 25곡을 연주했고, 오래된 곡들의 비중도 꽤 높았다. 또한 세 번의 앵콜도 그리 흔한 일은 아니었다. 멤버들은 또 오겠다는 인사도 없이 무대를 떠났지만, 섭섭하지 않았다. 뜬금없이 또 한국을 방문해주면 더 반가울 테니까. 라디오헤드 내한공연을 1990년대에 봤다면 어땠을까? 아마 지금처럼 행복하진 않았을 것이다.
 
Setlist
01 Lotus Flower
02 Bloom
03 15 Step
04 Weird Fishes/Arpeggi
05 Kid A
06 Morning Mr. Magpie
07 The Gloaming
08 Separator
09 Pyramid Song
10 Nude
11 Identikit
12 I Might Be Wrong
13 There There
14 Karma Police
15 Myxomatosis
16 Feral
17 Idioteque
Encore
18 Give Up the Ghost
19 Exit Music (For A Film)
20 Talk Show Host
21 The National Anthem
22 Planet Telex
23 Everything In Its Right Place
Encore 2
24 Reckoner
Encore 3
25 Paranoid Android

나머지 사진과 동영상


Pyramid Song

 

There There

 


Karma Police


Idiotheque




Written By 화이트퀸 (styx020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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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hitequeen.tistory.com

  • loureed 2012.08.06 19:56

    최고의 경험이엇습니다..ㅎㅎ 상상을 넘엇던 공연만큼이나 상상이상이었던 교통란때문에 갈때는 혹여 라헤의 공연에 늦을까걱정할정도였고, 끝나고나선 차도에서 딱 2시간을 그냥 서있었던 것만 빼고는 너무 황홀한 공연이엇어요.. 부디 담번에 제발 지산말고 단독공연으로 왔으면 좋겠네요...ㅎㅎ

    • Favicon of https://whitequeen.tistory.com BlogIcon 화이트퀸 2012.08.09 14:01 신고

      역시 교통지옥을 경험하셨군요. ㅜㅜ
      회사 퇴근하고 오려다 교통체증으로 포기한 분도 있던데, 제가 좋아하는 밴드들은 단독공연으로 왔으면 좋겠어요. ㅎㅎ
      공연은 정말 대단했죠. 정신 못차리고 봤습니다. ^^

  • 장초 2012.08.11 19:08

    교통지옼은 끝나고가 시작이엇어여;;
    멀리서봐서 상의 탈의를 보지못했다!!
    그런 게 있었다니!!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