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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레너드 코헨 별세. 우리는 위대한 음유시인을 잃었다.

전설적인 시인, 작곡가, 아티스트였던 레너드 코헨(Leonard Cohen)이 별세했다. 한국 시각으로 11월 11일 아침, 그의 페이스북을 통해 “매우 슬프지만, 레너드 코헨이 세상을 떠났음을 알린다.”는 성명이 발표되었다.

아직 정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죽을 준비가 되어있다며 초연한 모습을 보였다. 지난달에 발표한 14번째 스튜디오 앨범 “유 원트 잇 다커(You Want It Darker)"도 예사롭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갑작스레 우리 곁을 떠날 줄은 몰랐다.


ⓒ Sony Music

믿고 싶지 않은 소식에 수많은 팬과 아티스트의 추모글이 이어졌다. 베트 미들러(Bette Midler)는 “또 하나의 마법 같은 목소리가 잠잠해졌다”며 슬퍼했고, 폴 스탠리(Paul Stanley)는 “그는 마지막까지 시인, 작곡가, 방랑자였다”는 글을 남겼다. 제니퍼 허드슨(Jennifer Hudson)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곡 중 하나인 “할렐루야(Hallelujah)”를 언급하며 감사를 표했고, 루비 로즈(Ruby Rose)는 “우린 프린스, 보위, 레너드 코헨을 잃고 트럼프를 당선시켰다”며 탄식했다.

캐나다 총리 저스틴 트뤼도(Justin Trudeau)는 “레너드 코헨은 60년대뿐만이 아닌 지금도 공감을 부르는 아티스트였다. 그는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오랜 기간 영향력 있는 뮤지션으로 남았다"고 극찬했다.


ⓒ Sony Music

레너드 코헨은 지금까지 수많은 업적을 인정받으며 로큰롤 명예의 전당, 작곡가 명예의 전당, 그래미 어워드 평생 공로상, 스페인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아스투리아스 왕세자상은 물론 캐나다 정부로부터 국가 훈장까지 받았다. 그가 남긴 음악은 수백 명의 아티스트에 의해 커버되며 세대를 초월한 사랑을 받았다. 록의 시인이었던 루 리드(Lou Reed)는 레너드에 대해 "가장 숭고하고 영향력 있는 작곡가 중 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레너드 코헨이 2010년대에 발표한 세 장의 스튜디오 앨범


<올드 아이디어스(Old Ideas)> 2012년 발매
2012년 1월, 레너드 코헨이 8년 만에 발표한 새 앨범은 연초부터 ‘올해의 앨범 리스트’를 업데이트하게 했다. 10개국 음반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상업적 성과도 눈부셨다. 사색에 잠긴 노년의 신사는 삶의 기억들을 어루만지고, 특유의 낮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깊고 고요한 밤, 오프닝 트랙 ‘고잉 홈(Going Home)’이 흐르는 순간부터 40분간 모든 걸 내려놓게 된다. 주변의 모든 소리를 잠시 차단하고 아무 말 없이 이 앨범을 듣는 것만큼 느긋하고 풍요로운 휴식은 없다.


<파퓰러 프로블럼스(Popular Problems)> 2014년 발매
80번째 생일을 기념하며 발표한 이 앨범은 또 한 번의 놀라움을 안겼다. 빠르게 변화하는 것보다 느리게 움직이는 삶이 더 좋다고 이야기하는 ‘슬로우(Slow)’부터 바로 흡수되지 않는 ‘한 편의 시와 같은 음악’의 힘을 보여준다. 팔순을 앞둔 나이에 다시금 음악의 소중함을 깨달은 그는 지난 앨범의 성공과 함께 새로운 에너지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디드 아이 에버 러브 유(Did I Ever Love You)’, ‘유 갓 미 싱잉(You Got Me Singing)’ 등 더 활기를 띠는 사운드와 다채로운 음악으로 구성된 걸작이다.


<유 원트 잇 다커(You Want It Darker)> 2016년 발매
지난 10월에 발표한 이 앨범은 레너드 코헨의 스완송이 되었다. 끝 모를 어둠으로 인도하는 것 같지만, 곧 마음이 평온해지는 ‘유 원트 잇 다커(You Want It Darker)’로 시작되는 앨범은 그윽한 보컬과 잔잔한 피아노가 흐르는 ‘트리티(Treaty)’로 서서히 나아간다. 노년의 시인이 남긴 담담한 편지 같은 ‘이프 아이 디든트 해브 유어 러브(If I Didn't Have Your Love)’, ‘트래블링 라이트(Traveling Light)’도 깊은 여운을 남긴다.

세상의 온갖 어지러움을 잠시 지워버린 것 같은 앨범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음악만을 듣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다시 일깨워준다. 지금 같은 시대에 음반을 듣는 게 과연 의미가 있을지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의문’도 소리 없이 사라졌다.

R.I.P. Leonard Cohen.

오마이 뉴스에 쓴 기사 [ 링크 ] [ 네이버 ] [ 다음 ]

*편집부에서 다른 제목으로 편집을 해주셨는데, 트럼프와는 무관한 레너드 코헨 추모 기사입니다.


오랜만에 꺼낸 소장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