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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불안과 분노, 자기반성이 공존하는 강렬한 앨범, 에미넴의 'The Marshall Mathers LP 2'


01 Bad Guy 
02 Parking Lot (skit)
03 Rhyme Or Reason
04 So Much Better
05 Survival
06 Legacy
07 Asshole (Feat. Skylar Grey)
08 Berzerk 
09 Rap God 
10 Brainless
11 Stronger Than I Was 
12 The Monster (Feat. Rihanna)
13 So Far... 
14 Love Game (Feat. Kendrick Lamar)
15 Headlights (Feat. Nate Ruess of Fun.)
16 Evil Twin 
Disc 2 (Deluxe Edition)
01 Baby 
02 Desperation (Feat. Jamie N Commons) 
03 Groundhog Day 
04 Beautiful Pain (Feat. Sia)
05 Wicked Ways/Silence/Ken (skit) (non-featuring version) 

에미넴에게 실패란 없다
음반 시장 불황이 본격화된 2000년대에 가장 많은 앨범을 판매한 아티스트는 바로 에미넴(Eminem)이다. 2000년 [The Marshall Mathers LP]를 시작으로 모든 앨범을 영미 차트 1위에 올려놓았고, 전세계 판매량은 1억장을 넘겼다. 2004년 [Encore] 이후 5년 만에 발표한 [Relapse]는 메이저 앨범 중 가장 부진했지만 미국에서 더블 플래티넘을 기록했다. 또한 에미넴이 소속된 D 12의 앨범, 그가 주연을 맡은 영화 ‘8 Mile’의 사운드트랙, 세이디 레코드의 새로운 아티스트들을 소개한 프로젝트 앨범 [Eminem Presents: The Re-Up]도 모두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래미 어워드에서는 베스트 랩 앨범을 5회나 수상하며 지금까지 13개의 트로피를 손에 넣었다. 에미넴은 한때 개인적인 시련을 겪기도 했지만, 동시대를 풍미한 래퍼들의 하향세와 무관하게 성공을 이어갔다.

에미넴의 기세는 2010년대에도 꺾이지 않았다. [Relapse] 후속편으로 2010년 발표한 [Recovery]는 다시 전세계 판매량 1000만장을 넘기며 일부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디트로이트와 뉴욕 양키 스타디움에서 펼친 제이 지(Jay Z)와의 합동 공연은 순식간에 매진됐다. 그의 외모는 놀라울 정도로 큰 변화가 없었지만, 과거에 비해 긍정적이고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변함없이 무례하고, 섬뜩하며, 강렬한 앨범. The Marshall Mathers LP2
2012년 6월, 에미넴은 작업 중인 새 앨범에 대해 이야기했다. 든든한 스승이자 동료인 닥터 드레(Dr. Dre)가 참여한다는 것 외에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방향은 확실히 잡은 것으로 보였다. 같은 해 8월에 열린 첫 내한공연에서는 가족과 동료 뮤지션들을 싸잡아 비난한 거친 언행은 물론 이혼, 알코올, 약물 문제로 끝없이 가십을 생산해낸 화려한 전적 때문인지 뜻밖의 ‘하트 퍼포먼스’가 큰 화제를 모았다. 일부 팬들은 “에미넴에게 훈훈함 따위는 없다”고 주장하며 다양한 해석을 내놓았다. 이를테면 “네 두개골을 갈라버리겠다”는 뜻이 담긴 새로운 욕 혹은 약물 부작용, 시차 적응 실패 같은. 한가지 확실한 사실은 한국 공연을 마친 에미넴이 굉장한 만족감을 표했다는 것이다.

올해 초부터 조금씩 윤곽을 드러낸 새 앨범에는 수많은 뮤지션과 작업한 릭 루빈(Rick Rubin)이 프로듀서로 처음 이름을 올려 궁금증을 자아냈다. 그가 프로듀싱한 싱글 ‘Berzerk’는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서 첫 선을 보였고, 이틀 뒤인 8월 27일 디지털로 공개했다. 1980년대를 풍미한 빌리 스콰이어(Billy Squier)의 히트곡 'The Stroke', 록과 랩의 조합으로 음악계를 평정한 비스티 보이즈(Beastie Boys)의 'The New Style', '(You Gotta) Fight For Your Right (To Party!)'를 샘플링한 이 곡은 올드 스쿨 힙합을 충실하게 재현한다. 거대한 라디오카세트가 등장하는 뮤직비디오에는 키드 록(Kid Rock)과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가 카메오로 등장했다.

신곡 ‘Berzerk’만큼 화제가 된 것은 [The Marshall Mathers LP 2]라는 타이틀이었다. 2000년에 발표한 자전적인 앨범 [The Marshall Mathers LP]는 지금까지 2700만장이 판매된 에미넴 최고 히트작으로 ‘The Real Slim Shady’, ‘Stan’, ‘The Way I Am’ 등을 수록하고 있다. 지금도 이 앨범을 최고로 손꼽는 팬들이 많다. 따라서 속편임을 명시한 타이틀에 에미넴이 10대를 보낸 디트로이트 집이 커버로 재등장한 신작은 큰 기대를 모을 수밖에 없었다. 이에 에미넴은 ‘The Marshall Mathers LP 2’는 속편의 의미가 아닌 ‘그 시절의 분위기와 향수를 떠올리는 타이틀’이라고 설명했다.

앨범 발표를 앞두고 펼친 또 하나의 이벤트는 10월에만 3개의 신곡을 연이어 공개한 것이다. 비디오 게임 ‘콜 오브 듀티 고스트(Call of Duty: Ghosts)’에 쓰인 ‘Survival’은 디제이 카릴(DJ Khalil)이 프로듀싱한 곡으로 리즈 로드리게스(Liz Rodrigues)의 보컬이 삽입됐다. 속사포 같은 랩을 쏟아내며 테크닉을 과시한 ‘Rap God’은 1980년대 힙합 넘버들을 샘플링한 싱글이다. 에미넴은 프로듀서 DVLP에게 “자신이 경험한 최고의 비트였다”는 말로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호모포비아 성향을 드러낸 노랫말은 격렬한 비난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전세계 차트를 평정한 ‘Love The Way You Lie’에 이어 또다시 리아나(Rihanna)가 피처링한 ‘The Monster’는 대형 히트를 예고하고 있다. 지나치게 상업적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무난한 흐름을 보여주며 영국 차트 1위에 올랐다.

2개 파트로 구성된 톱 트랙 ‘Bad Guy’는 ‘Stan’과 흡사한 전개를 보여주는 광대한 서사시다. 폴리나(Polina)의 보컬이 삽입된 ‘Legacy’, 스카일라 그레이(Skylar Grey)의 피처링과 퍼커션이 인상적인 ‘Asshole’은 [The Marshall Mathers LP] 시절의 어두운 분위기를 재현한다. 여성 비하적인 ‘So Much Better’, ‘Love Game’ 같은 무례함은 다시금 논쟁을 불러일으킬만하다. 좀비스(The Zombies)의 히트곡 ‘Time Of The Season’을 절묘하게 샘플링한 ‘Rhyme Or Reason’, 조 월시(Joe Walsh)의 ‘Life's Been Good’이 가진 블루지한 매력을 잘 살려 샘플링한 ‘So Far...’, 웨인 폰타나 앤 더 마인드벤더즈(Wayne Fontana And The Mindbenders)의 ‘Game Of Love’를 샘플링한 곡으로 켄드릭 라마가 참여한 ‘Love Game’ 등 릭 루빈의 손을 거친 곡들은 ‘과거로 회귀한 느낌’이 강하다.

뛰어난 라임을 과시한 ‘Brainless’의 분노는 강렬하다. ‘Stronger Than I Was’는 뜻밖의 감성적인 발라드다. 특유의 완고한 모습에서 한발 물러난 ‘Headlights’는 펀(Fun.)의 네이트 루스(Nate Ruess)가 피처링한 새로운 곡으로 아주 좋은 반응이 예상된다. 이미 앨범 최고의 트랙이라는 찬사도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다. ‘Evil Twin’은 섬뜩한 클로징 트랙으로 익숙한 이름들이 대거 등장한다. 귀에 착 붙는 ‘Baby’와 제이미 엔 커먼스(Jamie N Commons)가 피처링한 ‘Desperation’ 등 딜럭스 에디션에 수록한 곡들도 강한 인상을 남긴다.

변함없이 섬뜩하며, 강렬하다. 에미넴의 초기작들을 좋아하는 팬들과 성숙해진 최근작들을 좋아하는 팬들 모두를 만족시킬만한 작품이다. 13년 전과 매우 유사한 사운드와 스토리텔링, 올드 스쿨 힙합에 대한 경의가 담긴 [The Marshall Mathers LP 2]를 통해 다시 자신과 마주한 에미넴의 전성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싸이월드 뮤직 2013년 11월 12일자 이주의 앨범 원고 [ 링크 ]